스리랑카 콜롬보 첫날, 공항 커플부터 대학생 셀카까지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즉흥적으로 검색해 정한 다음 행선지가 스리랑카였다. 항공권은 311말레이시아링깃, 그때 환율로 9만 2천 원 남짓. 반다라나이케 국제공항에 내리는 순간까지도 콜롬보에서 뭘 할지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다. 그런데 계획이 없다고 사람까지 못 만나는 건 아니었다. 이날 하루에만 비행기 옆자리에서 만난 커플부터 버스 옆자리 여행자, 공원의 낯선 가족들, 거리의 대학생들, 밤에 폰으로 한국 드라마를 틀어준 숙소 아저씨까지 스쳐 지나갔다.
지금 당장 필요한 정보만 본다면 여기서 — 콜롬보 공항버스 타는 법 → · 비하라마하데비 공원 가는 법 →. 아니라면 그날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공항에서, 대인배 남자친구를 만나다
비행기 옆자리와는 인사만 나누고 끝나는 사람이 많다. 나는 반대였다. 착륙 후 게이트를 나서던 길, 버킷햇을 쓴 여성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금세 친해졌다.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사진도 몇 장 찍었다. 옆에 계속 같이 있던 남자가 있다는 건 그제야 알아챘다. 남자친구였다. 그것도 모르고 신나서 이것저것 말을 걸었으니 불편했을 법도 한데, 다행히 남자친구도 대인배였다. 끝까지 웃으며 함께 사진을 찍어줬다.

187번 버스, 110루피, 그리고 옆자리 일본인
공항에서 시내로 가는 방법은 187번 버스가 제일 쌌다. 요금은 110루피, 환율로 치면 오백 원이 채 안 됐다. 서울 시내버스 요금의 3분의 1 수준이니, 첫 대중교통치고는 나쁘지 않은 시작이었다. 버스 안에서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이마에 두건을 두르고 안경을 쓴 일본인 아저씨였다. 여행 6년째라 했고, GPS 하나로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같이 저녁을 먹기로 이야기가 오갔다. 그런데 정작 근처가 자기 숙소라며 순식간에 내려버렸다. 낯선 도시 한복판에 혼자 남겨진 순간, 어쩐지 웃음이 났다.


회전 원판과 백마가 있는 공원
시내 어딘가에서 내려 걷다 만난 공원에는 놀이터가 있었다. 말 모양 목마 대신 난간만 두른 둥근 철제 원판이 도는 놀이기구가 놓여 있었다. 아이들이 그 위에 올라서면 어른 한 명이 옆에서 원판을 밀어줬다. 나머지 가족들은 파랑과 회색이 번갈아 깔린 체크무늬 타일 바닥에 둘러서서 지켜봤다. 작은 동네잔치 같았다. 조금 더 걸으니 이번엔 관광객을 태우는 백마 마차가 나무 그늘 아래 서 있었다. 붉은 안장을 얹은 채 손님을 기다리는 모습이 여유로웠다. 그러다 잔디밭 한가운데서 소 한 마리와 마주쳤다. 밧줄에 묶인 채 양동이에 머리를 박고 먹이를 먹고 있었다. 왜 공원 한가운데 소가 있는지는 끝내 알아내지 못했다. 정답 없는 질문 하나를 품은 채 발걸음을 옮겼다.



공원을 도는 동안 매점에서 초콜릿 아이스크림콘을 하나 샀다. 입구에서 받은 공원 안내지도를 펼쳐 든 채로 콘을 그 위에 올려 사진을 찍었다.

잔디밭 사이의 오래된 기념비들
놀이터를 지나 공원을 가로지르니 잔디밭 사이에 오래된 기념물이 몇 개 서 있었다. 하나는 돌을 쌓아 만든 기단 위에 금색 소년상이 한 팔을 든 모습이었고, 붙어 있는 명판에는 실론 보이스카우트 운동의 다이아몬드 주빌리를 기린다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실론은 스리랑카의 옛 이름이다.

조금 더 걸으니 이번엔 흰 대리석 좌상이 나왔다. 왕관을 쓰고 의자에 앉은 여성상이었고, 기단에 1897년 다이아몬드 주빌리 기념이라고 적혀 있었다. 빅토리아 여왕이다. 야자수와 잔디밭 한복판에 앉은 영국 여왕이라니 어색했다. 그러다 스리랑카가 영국령이던 시절을 떠올리니 어색할 것도 없었다.

그 근처에는 흰 글자를 세워 만든 LAKMEDURA라는 표지도 있었다. 뒤로 사원을 본뜬 조형물이 서 있었다. 그때는 무슨 뜻인지 몰라 사진만 찍고 지나쳤다.

맥도날드에서, 그리고 거리의 대학생들
오후 늦게 들른 맥도날드는 스리랑카식으로 살짝 비틀려 있었다. 향신료를 넣은 노란 라이스에 튀긴 치킨, 진한 커리소스가 세트로 나왔다. 익숙한 로고 아래 낯선 메뉴를 먹고 있으니 어디에 와 있는지 새삼 실감이 났다. 식사를 마치고 골목을 걷는데 대학생 무리가 눈에 들어왔다. 먼저 다가가 말을 붙였고, 몇 마디 나누자마자 다 같이 셀카를 찍자는 얘기가 나왔다. 여섯 명이 한 화면에 다 들어오게 하느라 팔을 최대한 뻗어야 했다. 낯선 도시에서 낯선 또래에게 먼저 말을 거는 버릇이 생긴 게 아마 이때부터였을 것이다. 지금도 여행지에서 비슷한 또래를 마주치면 반갑게 먼저 인사를 건넨다.

한 장으로 끝날 리가 없었다. 두 번째 컷에서는 다들 손가락으로 카메라를 가리키고 입을 벌리고 난리였다. 처음 만난 지 오 분도 안 된 사람들이었다.

골목을 마저 걸어 나오는데 나무 밑에 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콜롬보에서 처음 본 고양이였다.



Lanka Hostel, 그리고 Florian
숙소로 정한 곳은 Lanka Hostel이었다. 밤에 밖에서 본 정문은 검은 철제 격자문이었고, 그 안쪽 형광등 하나만 켜져 있었다. 로비 벽에는 스리랑카 전도가 걸려 있었다. 여행 내내 가야 할 곳들을 그 지도 앞에서 처음 가늠해봤다. 숙소 앞 노점에서 코투 로티로 저녁을 해결했다. 얇게 썬 로띠와 채소, 고기를 팬 위에서 잘게 다져 볶아내는 요리인데 향신료 맛이 진했다. 저녁을 먹고 로비에 앉아 있는데 곱슬머리의 백인 남성이 말을 걸어왔다. Florian이었다. 대화가 술술 풀리더니 다음 날부터 같이 다니기로 약속까지 잡혔다. 어두운 조명 아래서 찍은 사진들은 죄다 살짝 흔들렸다. 돌이켜보면 그날 내가 그만큼 들떠 있었다는 증거 같기도 하다.




밤 열 시 반, 아저씨가 틀어준 사극
Florian과 이야기가 끝나갈 무렵 이번엔 숙소 아저씨가 다가왔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대뜸 자기 폰을 꺼내더니 영상 하나를 틀어줬다. 한복을 입은 여성이 나오는 사극이었고, 대사는 전부 현지어 더빙이었다. 스리랑카에서 대장금이 인기라고 했다. 화면 속 작품은 대장금보다 같은 배우가 나오는 다른 사극에 가까워 보였다. 아저씨에게 그건 중요한 구분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날 밤 찍어둔 20초 — 소리를 켜면 현지어 더빙이 들린다
한국 드라마가 아시아에서 통한다는 말은 그전에도 들어봤다. 그래도 콜롬보의 작은 호스텔 로비에서 처음 만난 아저씨가 그걸 자기 폰에 담아두고 있을 줄은 몰랐다. 이날 마지막 대화가 내가 떠나온 나라 이야기였다.
콜롬보 공항버스 타는 법
공항 터미널을 나와 오른쪽으로 200미터쯤 걸으면 파란 표지판이 붙은 정류장이 나온다. 여기서 187번 버스를 타면 콜롬보 시내까지 60~90분, 요금은 실제로 탔을 때 110루피였다. 운행 간격은 15~30분, 첫차는 새벽 5시 반, 막차는 밤 10시쯤이다. 예약은 필요 없고 탑승 후 차장에게 현금으로 결제하면 된다. 짐이 많다면 좌석이 넉넉한 SLTB 익스프레스 버스도 고려할 만하다.
비하라마하데비 공원 가는 법
국립박물관 옆에 붙은 이 공원은 콜롬보에서 가장 큰 공원으로, 부지만 50헥타르(123에이커)에 이른다. 미니 동물원과 놀이터, 회전목마, 승마 체험이 갖춰져 있고 최근 정비를 거쳐 산책로와 벤치도 깔끔해졌다. 입장은 무료다. 시내 어디서든 툭툭으로 쉽게 갈 수 있고, 저녁 무렵이면 현지 가족 단위 방문객이 특히 많다.
다시 읽을 거리
한국을 포함한 40개국 국민은 30일짜리 전자여행허가(ETA)를 무료로 받을 수 있다. 다만 무료 대상국인지는 출국 전 ETA 공식 수수료 페이지에서 미리 확인해야 한다. 환전은 공항 환전소에서 당장 쓸 만큼만 소액으로 바꾸고, 남은 금액은 시내 라이선스 환전소나 ATM을 이용하는 편이 대체로 유리하다. 대략적인 환율은 1달러에 300루피 안팎이다. 공항공사 교통 안내에도 버스·택시 요금이 정리돼 있으니 도착 전에 한 번 훑어보면 도움이 된다.
다녀와서
뒤죽박죽으로 시작한 하루였다. 그런데 돌아보면 그만큼 사람을 많이 만난 하루도 없었다. 공항의 커플, 버스 옆자리 여행자, 공원의 낯선 가족들, 거리의 대학생들, 그리고 Florian까지. 계획이 없다고 아무것도 안 남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계획이 없어서 매 순간 사람에게 눈을 돌릴 수 있었던 것 같다. 다시 콜롬보에 간다면 이번엔 서두르지 않고, 그 공원 벤치에 한참을 앉아 있고 싶다.
다음 편은 콜롬보 이틀째, 시마말라카 사원과 페타 시장, 그리고 침대 위에 남겨진 낯선 메모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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