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보공항에서 보낸 마지막 밤, 홍차 한 잔과 다음 나라를 검색하던 시간

앞 편 마지막 문장 그대로, 그 밤 이야기다. 카운터에서 새 항공권을 받아 든 게 오후였는데, 새벽 flydubai 편까지는 아직 열두 시간 넘게 남아 있었다. 아침부터 정신없이 뛰어다닌 하루 끝에 할 일은 하나였다. 이 시간을 어떻게 버티느냐.

실전 정보만 급하면 여기서 바로 내려가면 된다 — 미리사·갈레에서 콜롬보공항 가는 법 → · 체크인 여유시간 → · ETA·환전 최신정보 →. 우선은 그 밤 이야기부터.

남은 루피로 마지막 식사

시간도 돈도 남았으니, 공항 2층 레스토랑에 자리를 잡았다. 사모사와 커틀릿, 볶음밥에 커리, 콜라 한 병까지 한 상 가득 시켰다. 어차피 다 쓰고 갈 루피였다.

공항 2층 레스토랑에서 시킨 스리랑카식 한 상
공항 2층 레스토랑 — 사모사·커틀릿·볶음밥 한 상

디저트로 처음 보는 현지 요거트도 하나 집었다. "Nes Lite Set Yoghurt"라고 적힌 자그마한 플라스틱 컵이었다. 냉장고에서 막 꺼냈는지 겉면에 물기가 맺혀 있었다.

뚜껑을 열기 전의 현지 요거트 컵, 겉면에 물기가 맺혀 있다

접시를 다 치우고 나니 테이블 위엔 그 컵 하나만 남았다. 자그마한 컵에 담긴 요거트를 마지막 디저트 삼아 비웠다.

처음 먹어본 스리랑카 요거트
공항 디저트 — 처음 먹어본 현지 요거트

뚜껑을 열어보니 표면이 매끈하게 굳어 있었다. 떠먹는 요거트라기보다 푸딩에 가까운 질감이었고, 단맛은 거의 없었다. 그 심심한 맛이 오히려 그날 밤에는 맞았다.

뚜껑을 열고 한 스푼 뜬 요거트, 푸딩처럼 매끈하게 굳어 있다

커피빈 홍차와 『왕좌의 게임』

긴 밤을 때울 때 누군가는 의자에 기대 잠을 청할 것이다. 나는 커피빈에 자리를 잡고 책을 펼쳤다. 홍차 티백을 우린 잔 옆에 놓은 건 며칠 전 서점에서 산 『A Storm of Swords』였다. 영어 원서라 진도는 더뎠지만, 갈 곳 없는 밤엔 오히려 페이지를 넘기기 나쁘지 않은 시간이었다.

커피빈 홍차 한 잔과 나란히 놓인 『A Storm of Swords』

잔을 위에서 내려다보면 티백 실이 손잡이에 걸쳐져 있었다. 같은 잔을 각도만 바꿔 두 번 찍었는데, 아마 그때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밖에 없어서였을 것이다.

위에서 내려다본 커피빈 홍차 잔, 티백 실이 손잡이에 걸쳐져 있다

홍차 한 모금에 정신이 좀 들었다. 여행기엔 좋은 이야기만 적어왔지만, 힘들 때는 다 버리고 집에 가고 싶은 순간도 적지 않았다. 그래도 그 순간 떠오른 생각은 하나였다. 미리사 해변과 그 숙소는 정말 다시 가고 싶을 만큼 좋았다.

두바이를 미리 훔쳐보다

홍차를 반쯤 비웠을 때 아이패드를 꺼내 다음 나라를 검색했다. 페낭에서 KLIA로 넘어오던 밤에도 똑같았다. 그때도 침대에 누운 채 다음 행선지를 하루 전날에야 찾아봤다. 이번엔 침대도 없이 공항 의자에서, 그것도 계획한 날보다 하루 늦게 같은 걸 하고 있었다.

아이패드 화면 속 두바이 에어비앤비 매물 — 부르즈 할리파 근처, 남성 전용 도미토리

"Bedspace Next To Burj Khalifa"라는 매물이 눈에 들어왔다. 부르즈 할리파 도보 10분, 지하철역 도보 2분, 남성 전용 도미토리였다. 홍콩까지는 며칠 치 일정을 미리 짜서 움직이던 여행자였는데, 이 여행에서 J는 이미 오래전에 P가 되어 있었다. 그날은 그 P가 한 번 더 확인된 밤이었다.

새벽에 만난 친구

밤이 깊어질수록 대합실은 오히려 사람이 늘었다. 비슷한 시간대 비행기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그 틈에서 옆자리 여성과 눈이 마주쳤고, 몇 마디를 주고받다 이야기가 술술 풀렸다.

그날은 북유럽 어디쯤이겠거니 짐작만 했다. 국적을 끝내 못 물어봤기 때문인데, 나중에 알고 보니 체코 사람이었다. 얼굴을 보면 성인이 분명한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고등학생인가 싶을 만큼 앳된 구석이 있었다. 헤어지기 전에 SNS로 서로 친구를 추가했다.

새벽 콜롬보공항에서 함께 찍은 사진

그 친구 추가는 그날로 끝나지 않았다. 며칠 뒤 두바이에 도착했을 때 먼저 메시지가 왔다. 두바이는 어떠냐고. 같이 찍은 사진에 내가 한국어로 달아둔 말이 대체 무슨 뜻이냐고도 물었다. 그러다 자기가 다니는 학교 전공이 영 안 맞아서 바꿀까 고민 중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나는 전공을 바꿔본 적이 있다고 했다. 경제학으로 시작했다가 게임 쪽으로 옮겼다고. 너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새벽 공항에서 몇 시간 떠든 사이에 할 말은 아닌 것 같았는데, 그때는 그냥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친구는 내 친구 목록에 있다. 가끔 올라오는 사진을 보면 결혼해서 잘 사는 모양이다. 그날 밤 이야기가 무슨 대단한 인연으로 이어진 건 아니다. 다만 목록 어딘가에 남아서, 가끔 이렇게 그날을 떠올리게 한다.

비행기를 놓치고 전화비까지 물어낸 하루였는데, 그 끝은 결국 또 사람이었다. 쿠알라룸푸르에서도, 페낭에서도 그랬다. 낯선 사람 옆에 앉으면 일단 말을 걸어보는 버릇이 이번 여행 내내 이어지고 있었다. 힘든 밤에도 그 버릇은 그대로였다. 이 여행을 시작할 때는 몰랐던 나 자신이었다.

미리사·갈레에서 콜롬보공항 가는 법

남부고속도로(Southern Expressway, E01)가 콜롬보에서 마타라까지 이어져 있어서, 콜롬보공항에서 갈레까지는 고속버스나 택시로 1.5~2시간, 미리사까지는 2.5~3.5시간 정도 잡으면 된다. 다만 공항에서 갈레·미리사 방면으로 바로 가는 대중버스나 기차는 없고, 콜롬보 시내를 거쳐야 하는 구조라 공항↔해안 구간은 택시나 프라이빗 카가 훨씬 수월하다. 시내버스라면 반드시 고속버스(Expressway bus)인지 확인해야 한다. 일반버스는 정류장마다 서기 때문에 같은 구간도 배 이상 걸릴 수 있다.

체크인·출국 여유시간

반다라나이케 국제공항(BIA)은 국제선 기준 출발 3시간 전 도착을 권장하고, 성수기(오전 5~8시, 오후 4~7시)엔 3시간 30분 전이 안전하다. 체크인·수하물 카운터는 보통 출발 1시간~1시간 30분 전에 닫힌다. 해안 도시에서 출발한다면 이동시간에 이 여유분까지 더해 최소 5~6시간 전에는 숙소를 나서는 편이 낫다. flydubai를 포함한 여러 항공사는 출발 30일 이내로 미리 변경하면 위약금 없이(운임 차액만) 재예약이 가능하지만, 그건 사전 변경일 때 이야기고 그날의 나처럼 탑승 시각을 넘겨버린 노쇼는 대부분 새 항공권을 다시 사야 한다.

ETA·환전 최신정보

한국 국적자는 2026년 5월 25일부터 스리랑카가 무료 ETA 대상국 40개국에 포함되면서, 30일 체류에 한해 ETA 발급 비용이 면제됐다. 다만 발급 자체는 여전히 필수라 출국 전 공식 ETA 사이트에서 미리 신청해야 하고, 공항 즉석 발급은 안 된다. 환전 감각도 달라졌다. 그때는 100달러가 1만 3천 루피 정도였는데, 최근 기준으로는 1달러에 300루피 안팎이다. 그날 새 항공권으로 나간 LKR 12,566.58은 그때 환율로 약 10만 4천원, 지금도 여전히 부담스러운 금액이다.

다녀와서

말레이시아 KLIA에서도 한 번 밤을 새운 적이 있다. 그건 계획된 노숙이었다. 다음 비행기까지 시간이 남아 일부러 공항에서 자기로 한 밤이었다. 이번엔 달랐다. 계획에 없던 밤이 통째로 남았고, 그 안에서 밥을 먹고 책을 읽고 다음 나라를 찾아보고 낯선 사람과 친구가 됐다. 그때는 그 밤이 가혹하게만 느껴졌는데, 지나고 보니 이런 밤도 여행의 일부였다. 그래도 아침은 왔고 비행기는 떴다.

다음 편은 새벽 비행기로 넘어간 두바이, 경유지에서 마주한 낯선 도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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