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로세움에 안 들어갔다, 대신 고대 로마를 걸어서 통과했다

콜로세움 앞까지 갔는데 안 들어갔다. 지금 생각하면 아깝기도 한데, 그날의 선택 덕분에 알게 된 게 있다. 로마는 표를 사야 보이는 것보다 그냥 걷다가 마주치는 게 훨씬 많다.

바쁘면 실전 정보부터 — 콜로세움 표 사는 법 → · 표 없이 보는 고대 로마 →. 우선은 그날 낮에 걸은 길부터.

걷다 보니 광장이 나왔다

기둥이 우뚝 선 로마의 광장

성당 두 곳을 보고 나오니 열 시가 넘어 있었다. 해가 슬슬 세지는 시간이라 그늘을 따라 걸었다.

반원형 회랑이 도로를 감싼 광장이 나왔다. 공화국 광장이었다. 가운데 분수에는 물이 세게 뿜어져 나오고, 그 주변으로 차들이 회전하며 지나갔다. 로마는 광장이 교차로 역할을 겸하는 도시라, 유적 한복판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일이 하루에도 몇 번씩 생긴다.

여기서부터는 방향만 잡고 큰길을 따라갔다. 지도를 자주 안 봤는데, 로마 도심은 큰 건물이 이정표라 길을 크게 잃을 일이 없었다.

그러다 도로 건너편에 그게 있었다

도로 건너편으로 처음 보인 콜로세움
버스 한 대가 지나가고, 그 뒤에 콜로세움이 있었다

시내버스가 한 대 지나가고, 그 뒤로 콜로세움이 있었다.

사진이나 영상으로 수십 번 본 건물인데도, 실물이 도로 건너에 그냥 서 있는 게 이상했다. 무슨 유적지 안에 따로 모셔져 있는 게 아니라 버스 정류장 옆에 있다. 차가 지나가고 사람들이 횡단보도를 건너는 그 뒤로 이천 년 된 원형 경기장이 서 있는 구도가, 로마라는 도시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는 느낌이었다.

사진부터 한 장 찍었다. 얼굴을 넣으니 크기가 도무지 안 잡혀서 몇 번을 다시 찍었다.

콜로세움 앞 입장 줄을 배경으로 남긴 셀카
콜로세움 외벽을 배경으로 남긴 셀카

한쪽 외벽에는 가림막이 씌워져 있었다. 보수 공사가 상시로 돌아가는 건물이라 완전히 깨끗한 상태로 보기는 어렵다. 그것도 나름의 얼굴이라 생각하고 그대로 찍었다.

보수 공사용 비계가 세워진 콜로세움 외벽
보수 공사가 상시로 돌아가는 건물이다

줄을 보고 그냥 지나쳤다

콜로세움을 가까이 두고 찍은 셀카

입구 쪽으로 가보니 줄이 길었다. 그늘도 없었다.

현장에서 표를 사려면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 감이 안 왔고, 그날은 그걸 감당할 생각이 없었다. 아침부터 이미 세 시간을 걸은 뒤였다. 안 들어가기로 정하고 나니 마음이 오히려 가벼워졌다.

밖에서 한 바퀴 도는 데 이십 분 남짓 걸렸다. 아치가 층층이 쌓인 외벽을 따라 걸으면 각도마다 얼굴이 달라진다. 정면에서 보면 반듯한데, 무너진 쪽으로 돌아가면 단면이 그대로 드러나서 안이 어떻게 생겼는지가 오히려 잘 보인다.

아래에서 올려다본 콜로세움 아치

아치 사이로 저쪽 언덕의 유적이 겹쳐 보였다. 팔라티노 쪽이었다.

아치 너머로 보이는 팔라티노 언덕의 소나무와 유적

들어가지 않은 걸 후회하느냐면, 반반이다. 아레나 바닥에 서보는 경험은 밖에서 얻을 수 없다. 다만 그날 아낀 시간과 체력으로 그 뒤 세 시간을 더 걸었고, 그쪽이 이 편의 나머지가 됐다.

이십오만 명이 앉던 자리가 지금은 잔디밭이다

철책 너머로 보이는 팔라티노 언덕의 유적

콜로세움에서 남쪽으로 십 분쯤 걸으니 시야가 확 트였다. 길고 넓은 흙 벌판이 나왔다.

처음에는 공사장인 줄 알았다. 철책을 따라 걸으며 안내판을 읽고서야 치르코 마시모라는 걸 알았다. 고대 로마의 전차 경기장이다. 길이가 육백 미터에 가깝고, 관중이 이십만 명 넘게 들어갔다고 한다.

치르코 마시모를 배경으로 남긴 셀카
팔라티노 언덕 아래로 길게 뻗은 치르코 마시모

트랙 한쪽 끝에서 반대쪽 끝이 겨우 보였다. 지금은 관중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서 그냥 긴 웅덩이처럼 생긴 벌판인데, 그 규모 자체가 설명을 대신했다. 조깅하는 사람과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이 그 위를 지나갔다.

풀도 거의 없는 치르코 마시모의 흙 벌판
치르코 마시모 — 이십만 명이 앉던 자리가 지금은 빈 벌판이다

여기는 입장료도 철책 통제도 없다. 그냥 걸어 들어가서 가로질러도 된다. 로마에서 제일 큰 고대 구조물이 도시의 공터로 쓰이고 있었다.

극장 위층에 지금도 사람이 산다

아치가 층층이 쌓인 마르첼로 극장의 외벽
마르첼로 극장 — 아래는 이천 년 된 유적이고 위층에는 사람이 산다

거기서 강 쪽으로 더 내려가니 아치가 층층이 쌓인 반원형 건물이 나왔다. 콜로세움을 축소해놓은 것처럼 생겼는데, 위층만 색이 완전히 달랐다.

마르첼로 극장이었다. 콜로세움보다 먼저 지어졌고, 오히려 콜로세움이 이 건물을 본떴다고 한다. 재미있는 건 그다음이다. 중세에 요새로 쓰이다가 귀족 가문이 사들여 위층에 저택을 올렸고, 그게 지금까지 남아 아파트로 쓰인다. 아래는 이천 년 된 유적이고 위에는 사람이 산다.

창문에 커튼이 걸려 있는 게 보였다. 유적 위에 사는 기분이 어떨지 잠깐 생각했다.

철책 안쪽에는 발굴 중인 유적과 안내판이 서 있었다. 이 일대가 옛날 소 시장이 있던 구역이라, 땅을 파면 기원전 신전 토대가 계속 나온다고 적혀 있었다. 관광객이 거의 없어서 조용했다. 콜로세움 앞의 줄과 여기의 적막이 걸어서 이십 분 거리에 있다는 게 재미있었다.

유적 앞에 세워진 고대 성역 안내판

표 없이 보는 포로 로마노

사투르누스 신전의 기둥이 보이는 포로 로마노
포로 로마노 — 표 없이 난간에서 내려다본다

마지막으로 포로 로마노 쪽으로 올라갔다.

여기도 표를 안 샀는데, 도로변 난간에서 내려다보는 것만으로 상당 부분이 보인다. 사투르누스 신전의 기둥 여덟 개가 정면으로 보이고, 그 뒤로 개선문과 원로원 건물까지 이어진다.

난간에 팔을 걸치고 한참 내려다봤다. 위에서 보니 유적의 배치가 오히려 잘 잡혔다. 안에 들어가면 돌 사이를 걷느라 전체 그림이 안 보인다는 얘기를 나중에 들었는데,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인 것 같다.

철책 너머로 내려다본 포로 로마노 일대

풀이 자란 언덕 위로 벽돌 구조물이 삐죽삐죽 솟아 있었다. 저 아래가 이천 년 전 이 도시의 중심이었고, 지금은 그 위로 버스가 지나간다.

풀이 자란 언덕 위로 드러난 로마 유적

한낮이었고 그늘이 없었다. 그날 로마에서 제일 더웠던 구간이 여기였다.

돌아가는 길의 작은 분수

거북이가 얹힌 작은 분수 앞에서 남긴 셀카
거북이 분수 — 그날 본 것 중에 제일 오래 서서 봤다

큰길을 벗어나 골목으로 들어가니 작은 광장이 나왔다. 한가운데 분수가 하나 있는데, 청동 소년 넷이 돌고래를 붙잡고 있고 그 위 물받이 가장자리에 거북이 네 마리가 기어오르고 있었다.

크기는 정말 작다. 사람 키보다 조금 큰 정도라 광장에 들어서고도 한 박자 늦게 알아봤다. 그런데 그날 본 것 중에 제일 오래 서서 봤다. 콜로세움도 치르코 마시모도 규모로 압도하는 것들이었는데, 이건 그냥 잘 만들어서 좋았다.

물을 손에 받아 목덜미에 발랐다. 로마의 작은 분수들은 대부분 마셔도 되는 물이 나온다.

콜로세움 표 사는 법

지금은 예약 없이 가면 못 들어간다고 보는 게 맞다. 시간 지정제라 현장 발권분이 아주 적다.

권종요금포함
24시간권(기본)18유로콜로세움 1·2층 + 포로 로마노 + 팔라티노 + 임페리얼 포룸
풀 익스피리언스22~24유로위 + 아레나 바닥 또는 지하
  • 온라인 예약 수수료 2유로가 별도로 붙는다. 무료 대상인 18세 미만도 이 수수료는 낸다.
  • 공식 판매처는 `ticketing.colosseo.it`이고, 방문일 30일 전에 표가 풀린다. 성수기에는 풀리자마자 인기 시간대가 나간다.
  • 기본권은 24시간 유효하고 콜로세움 입장은 1회다. 포로 로마노·팔라티노는 같은 표로 같이 본다. 그래서 오후에 콜로세움을 보고 다음 날 오전에 포로 로마노를 보는 식으로 나눠 쓸 수 있다.
  • 여름에는 정오~오후 3시를 피하는 게 좋다. 유적 안에 그늘이 거의 없다.

로마패스로도 입장할 수 있지만, 시간 예약은 별도로 잡아야 한다. 패스가 있다고 자동 예약되지 않는다.

표 없이 보는 고대 로마

시간이나 예산이 빠듯할 때, 무료로 볼 수 있는 것만 모아도 하루가 찬다.

  • 치르코 마시모 — 완전 개방. 아무 때나 들어가서 가로질러도 된다. 팔라티노 언덕의 남쪽 사면이 정면으로 올려다보인다.
  • 포로 로마노 조망 — 임페리얼 포룸 대로(Via dei Fori Imperiali)와 캄피돌리오 광장 뒤편 난간에서 내려다보인다. 캄피돌리오 뒤쪽 전망대는 해 질 무렵 빛이 특히 좋다.
  • 마르첼로 극장과 포룸 보아리움 — 철책 밖에서 다 보인다. 신전 두 채가 야외에 그대로 서 있고, 진실의 입이 있는 성당도 바로 옆이다.
  • 콜로세움 외관 — 한 바퀴 도는 데 이십 분. 무너진 쪽 단면이 오히려 구조를 잘 보여준다.
  • 거리의 분수들 — 거북이 분수처럼 골목 안에 숨은 것들이 의외로 좋다. 로마 시내 곳곳의 작은 수도(나소네)에서는 마셔도 되는 물이 나온다.
  • 판테온 — 지금은 유료로 바뀌었지만, 광장에서 정면을 보는 건 여전히 무료다.

로마는 유적이 도시 안에 흩어져 있어서, 표를 사는 곳과 안 사는 곳의 경계가 흐리다. 걷는 동선만 잘 짜면 입장료를 거의 안 쓰고도 고대 로마를 종일 볼 수 있다.

다녀와서

그날은 유명한 곳을 다 찍고 다니는 여행이 아니었다. 표를 안 사고 지나친 게 많았는데, 대신 걸으면서 만난 것들이 오래 남았다.

특히 치르코 마시모가 그렇다. 아무 안내도 없이 그냥 빈 벌판이 나오고, 안내판을 읽고 나서야 발밑이 뭔지 알게 되는 순간. 로마에서 제일 좋았던 건 이런 쪽이었다. 다음에 간다면 콜로세움은 예약해서 들어가 보고, 그다음엔 또 이렇게 걷고 싶다.

다음 편은 같은 날 오후다. 판테온에서 점심을 먹고, 젤라또를 두 번 사 먹으며 분수와 광장을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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