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오 당일치기, 베네시안 가짜 하늘과 에그타르트 그리고 카지노 구경
홍콩 둘째 날은 아침 일찍 페리를 타고 마카오로 넘어갔다. 당일치기 코스였다. 홍콩에서 마카오 가는 페리와 무비자·카지노 규정은 지금도 크게 안 변했는데, 그것만 급하면 여기서 바로 내려가면 된다 — 홍콩 → 마카오 페리 → · 마카오 기본 정보 →. 우선 그날 이야기부터.
언어가 통하지 않을 때 아침식사를 주문하는 방법
페리 터미널 안에 있던 'MX'라는 밥집에 들어갔다. 나중에 알고 보니 홍콩·마카오에 흔한 프랜차이즈 美心MX(맥심 MX)였다. 영어도 짧고 한자 메뉴판은 못 읽으니, 방법은 하나 — 그림을 보고 세트 하나를 손가락으로 짚는 거였다.

그렇게 나온 게 비닐에 포장된 샌드위치, 죽 한 그릇, 그리고 밀크티 한 잔이었다. 옆 사람 샌드위치는 노릇하게 구워졌는데 내 건 굽지도 않고 그냥 포장만 해서 줬다. 밀크티 종이컵 옆면에는 奶茶·咖啡·凍奶茶·其他 네 칸이 인쇄돼 있었다. 주문받을 때 여기에 표시해서 내주는 모양이었다. 빨간 빨대가 꽂혀 나왔고, 쟁반 깔개에는 흰동가리 같은 물고기 그림이 잔뜩 인쇄돼 있었다.

죽은 뽀얀 빛깔이라 삼계탕 같은 닭죽인 줄로만 알았다. 한술 뜨는데 웬 땅콩이 씹혀서 그땐 잘못 나온 줄 알았다. 그런데 영수증을 보니 花生眉豆豬骨粥, 그러니까 땅콩과 동부콩을 넣은 돼지뼈죽이었다. 땅콩은 실수가 아니라 원래 재료였고, 돼지 뼈로 낸 죽은 그날 태어나서 처음 들어봤다. 세트가 HK$21.5, 죽이 HK$4.5. 낯선 곳에서 더듬더듬 시켜 먹는 것부터가 이미 여행 같았다.

영수증 두 장에는 직원이 볼펜으로 죽죽 그어 놓은 자국이 남아 있다. 나온 것부터 하나씩 지워 나간 흔적일 텐데, 나는 그게 무슨 표시인지도 모르고 받아 들었다. 찍힌 시각은 아침 8시 49분. 그러니까 나는 아홉 시도 안 된 시간에, 뭘 시켰는지도 모르는 채로 그 줄에 서 있었던 거다.
먹고 난 자리 그대로 — 영수증과 접힌 냅킨까지 남아있는 트레이
지금 사진을 다시 보니 그 샌드위치, 나중에 한국에도 상륙해 유행한 대만 브랜드 홍루이젠이랑 닮았다. 두꺼운 식빵 사이에 햄을 끼운 모양이 똑같은데, 그때는 그런 브랜드가 있는 줄도 몰랐다.
홍콩인데 또 입국심사
페리는 한 시간쯤 걸렸다. 배 안은 천장이 조금 낮아 답답했고, 한여름 홍콩 더위에 이미 지쳐 있었는데 다행히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와 그나마 살 만했다. 창밖으로 낮의 홍콩섬 스카이라인이 멀어지는 걸 보다 보니 어느새 마카오였다.

물보라를 가르며 지나가는 파란 배 옆구리에는 金光飛航이라고 적혀 있었다. 코타이 워터젯의 한자 이름이다. 그 뒤로는 빌딩이 산 능선에 닿을 때까지 빼곡히 들어차 있었고, 그 위로 여름 뭉게구름이 잔뜩 부풀어 있었다.
떠나는 배에서 홍콩섬 물가를 따라 카메라를 한 번 훑었다. 부두 건물과 빨간 철골 구조물이 지나가고, 그 뒤로 빌딩이 줄줄이 밀려나고, 산 능선까지 한 화면에 담긴다. 배가 속도를 올리기 시작해서 아래쪽으로는 하얀 물살이 계속 밀려났다.
마카오로 떠나는 배에서 — 멀어지는 홍콩섬 물가를 훑었다
도착하니 입국심사를 또 해야 했다. 홍콩이랑 마카오가 같은 나라인 줄 알았던 나는 그게 좀 번거로웠다. 둘 다 중국의 특별행정구지만 출입경은 따로 한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창유리에는 소금기가 뿌옇게 말라붙어 있었다. 그 너머로 초록 방수천을 두른 공사 중인 건물과, 배까지 이어지는 공중 통로가 보였다. 사진에는 좌석 등받이까지 같이 찍혔다. 자리에 앉은 채로 창밖만 내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물 건너 늘어선 카지노들
도착해 카지노로 가는 무료 셔틀을 잡아탔다. 마카오에선 카지노마다 페리터미널과 공항까지 공짜 셔틀을 돌린다. 물 건너로는 마카오의 카지노들이 죽 늘어서 있었는데, 황금 연꽃 모양의 그랜드 리스보아가 단연 눈에 띄었다. 카지노와 리조트가 이렇게 통째로 도시를 이룬다는 게, 라스베이거스도 안 가본 나에겐 그 자체로 구경거리였다.

연꽃 옆으로는 물결처럼 안으로 휜 구릿빛 건물이 서 있었다. 윈 마카오였다. 오른쪽 물가에는 디올 매장이 나란히 두 칸 붙은 쇼핑몰이 있었고, 왼쪽으로는 다리 하나가 호수를 가로질러 길게 놓여 있었다. 호텔과 명품 매장과 다리가 한 화면에 다 들어오는데, 정작 사람은 거의 안 보였다.
카지노마다 지키는 사자상
카지노마다 입구엔 커다란 조형물이 버티고 있었다. 시티 오브 드림스 입구엔 붉은 구슬을 문 청동빛 사자상이, MGM 앞엔 온몸이 금색인 거대한 사자상이 앉아 있었다. 온통 금색이라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한참을 구경했다.

가까이서 보면 갈기가 통짜가 아니라, 칼날 같은 조각을 수십 개 꽂아 만든 모양이었다. 앞발은 구슬 하나를 지그시 누르고 있었고, 받침대 가장자리에는 조명이 빙 둘러 박혀 있었다. 밤에는 아래에서 갈기를 쏘아 올릴 것이다. 등 뒤는 통째로 담쟁이 벽이라, 청동빛과 초록이 정면으로 붙어 있었다.

MGM 쪽은 아예 야외 한복판이었다. 자주색 유리를 물결치듯 붙인 건물 앞에, 화강암 원형 단을 딛고 사자가 앉아 있었다. 발치에 조명이 여러 대 박혀 사자만 노려보고 있었고, 옆으로 지나가는 어른과 아이가 사자 앞발께에도 못 미쳤다.
사자상만 금색인 건 아니었다. 어느 카지노 로비엔 황금 양이 바위 위에 올라서 있었다. 마카오 카지노는 정말이지 금색을 좋아했다.

원통형 로비 한가운데였다. 벽까지 금색 타일로 두른 방에, 금색 바위를 딛고 뿔이 둥글게 말린 양이 한 발을 들고 서 있었다. 표면이 잘게 반짝이는 게 금박을 조각조각 붙인 것 같았다. 왜 하필 양인가 싶었는데, 그해가 양의 해였다. 그해 내내 저 자리에 서 있었을 것이다.
가짜 하늘, 그리고 노래하는 뱃사공
베네시안 마카오 안으로 들어가자 천장부터 눈에 들어왔다. 실내인데 파란 하늘에 구름까지 그려져 있어서, 시간이 멈춘 대낮 속을 걷는 기분이었다. 이름 그대로 안에는 운하가 흐르고 뱃사공이 노를 젓는 곤돌라가 떠다녔는데, 뱃사공이 이탈리아 가곡을 부르기도 했다. 실내 운하에 노랫소리가 울리니 더 비현실적이었다. 도박장인지 테마파크인지 헷갈릴 만큼 규모가 컸고, 한참을 걸어도 끝이 안 보였다. 창이 없으니 밖이 밤인지 낮인지도 감이 안 왔는데, 카지노가 일부러 그렇게 설계한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운하 물빛은 형광에 가까운 파랑이었다. 벽돌 아치 다리가 물 위를 건너가고, 다리 너머엔 명품 매장 간판이 붙어 있고, 그 사이를 곤돌라가 지나간다. 난간에 기대 내려다보고 있으면 어디까지가 세트고 어디부터가 쇼핑몰인지 구분이 안 갔다.
그 뱃사공을 영상으로 찍어뒀다. 줄무늬 셔츠에 빨간 스카프를 두르고 빨간 띠 감은 밀짚모자를 쓴 사람이, 손님 둘을 태운 곤돌라를 노로 밀며 난간 바로 아래를 지나간다. 파일 이름을 '노래하는 아찌'라고 붙여놨던 걸 보면 그때 나는 이 사람이 노래하는 게 제일 신기했던 모양이다.
난간 아래를 지나가는 곤돌라 — 소리를 켜면 실내 운하의 울림이 들린다
배를 젓는 사람만 그 차림인 게 아니었다. 조금 뒤 상점가 통로에서는 똑같은 줄무늬 셔츠에 빨간 띠, 밀짚모자를 쓴 사람들이 예닐곱 명씩 떼로 걸어 다녔다. 쇼핑하던 사람들 사이를 뚫고 지나가는데도 아무도 돌아보지 않았다. 여기선 저게 그냥 평상복인 것이다.
상점가를 가로질러 가는 곤돌리에 무리 — 교대하러 가는 길이었을 것이다
운하를 따라 걷다 보면 산마르코 광장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광장이 나온다. 시계탑과 명품 상점 사이로, 그려진 하늘 아래 관광객이 가득했다.

시계탑 시계판에는 별자리 같은 눈금이 빙 둘러 그려져 있었고, 꼭대기엔 날개 달린 사자가 앉아 있었다. 그 아래로는 스와치와 판도라 간판이 걸려 있었다. 베네치아 광장에 스위스 시계 매장이 붙어 있는 셈인데, 아무도 이상해하지 않았다.
운하 쪽 하늘은 대낮인데, 몇 걸음 걸어 나온 광장 쪽 하늘은 해질녘 색이었다. 한 건물 안에서 하늘이 두 개의 시간을 살고 있었던 셈이다. 그때는 걷느라 눈치도 못 챘고, 사진을 나란히 놓고서야 알았다.

대리석 분수 한가운데, 금색 여인상이 커다란 고리를 머리로 이고 있었다. 고리에는 VENETIAN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고, 천장은 분홍과 금색 프레스코로 빈틈없이 채워져 있었다. 그 아래를 캐리어 끄는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지나갔다.
원조의 나라에서 온 에그타르트
리조트를 걷다 에그타르트를 하나 사 먹었다. 마카오 에그타르트는 포르투갈의 파스텔 드 나타에서 왔는데, 유명해진 데는 사연이 있다. 영국에서 약사로 일하던 앤드루 스토가 포르투갈에서 맛본 에그타르트에 반해, 콜로안 섬에 'Lord Stow's Bakery(안드류)'를 열고 아시아 최초의 에그타르트 전문점을 낸 게 시작이었다. 지금은 하루 수천 개가 팔리는 마카오의 상징이 됐다. 마카오식은 윗면에 설탕을 뿌려 살짝 그을리는 게 특징인데, 탄 자국이 쌉싸름하게 겉돌고 속은 따뜻한 커스터드라 우리나라 계란빵보다 훨씬 촉촉했다. 걸으면서 하나 더 살까 두 번쯤 고민했다.

종이봉투째 들고 운하 난간 앞에 서서 한 장 찍어뒀다. 뒤로 그 형광 파란 물이 그대로 배경에 깔렸다. 윗면 탄 자국은 고르게 퍼진 게 아니라 얼룩덜룩 제멋대로였고, 옆면 페이스트리는 결마다 부풀어 층이 다 보였다. 가짜 하늘 아래 가짜 운하를 옆에 두고, 포르투갈에서 건너온 과자를 먹고 있었다.
카지노는 구경만
마카오까지 왔으니 카지노도 잠깐 들여다봤다. 화려한 샹들리에 아래로 딜러의 손놀림과 칩 부딪는 소리만 낮게 깔렸고, 다들 진지한 얼굴로 판을 지켜봤다. 나는 언어도 안 되고 도박에는 영 관심이 없어서, 테이블 사이를 그저 구경만 하며 돌아다녔다. 사람들이 칩을 올리고 딜러가 카드를 돌리는 걸 옆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구경거리였다. 가까이서는 촬영이 안 돼, 위층 아트리움에서 아래층 카지노 홀을 내려다본 사진 한 장만 남았다.

그 한 장에 층이 통째로 담겼다. 천장에는 프레스코가 그려져 있고, 가운데 층에는 불가리·폴앤샤크 같은 간판이 걸려 있고, 아치 아래 한 층 밑으로는 초록 천을 씌운 테이블과 분홍빛 슬롯머신 화면이 줄지어 있었다. 명품 매장과 도박장 사이가 에스컬레이터 한 대였다.
돌아오는 배
홍콩으로 돌아오는 페리에서는 배 안 매점에서 신라면 컵을 하나 샀다. 일회용 포크가 딸려 나왔고, 국물은 좀 싱거웠지만 익숙한 매운맛이 낯선 하루 끝에 유독 반가웠다. 창밖으로는 마카오의 리조트 불빛이 점점 멀어졌다.

뚜껑을 반쯤 벗긴 채로 좌석 트레이 테이블에 올려놨다. 얇은 플라스틱 포크가 뚜껑 사이에 끼워져 있고, 트레이에는 빨간 미끄럼 방지 매트가 깔려 있었다. 하루 종일 한자 사이를 헤매다가, 돌아오는 배 위에서야 다 읽히는 글자를 만났다.
배에서 내려 밤거리를 걷다 허유산에서 망고 음료도 한 잔 마셨다. 진한 망고 맛이 나에겐 조금 달았지만, 무더운 하루의 마무리로는 시원해서 좋았다.

컵 아래쪽에는 노란 망고 과육이 통째로 잠겨 있었다. 초록 빨대로는 잘 안 빨려 올라와서, 결국 컵을 기울여 흔들어 가며 마셨다. 돔 뚜껑에는 HUI LAU SHAN, 컵에는 무슨 기념 로고가 찍혀 있었다. 사진 배경은 노란 이중선이 그어진 밤 도로다. 가게 안에 앉지도 않고 그냥 들고 나와 걸으면서 마셨다.
홍콩 → 마카오 페리
홍콩에서 마카오는 페리로 약 1시간이다. 터보젯은 홍콩섬 셩완의 마카오 페리터미널에서, 코타이워터젯은 침사추이(차이나 페리터미널)와 홍콩공항 등에서 뜬다. 둘 다 지금도 자주 운항하고 심야편도 있어서 당일치기가 넉넉하다. 편도 요금은 시간대·등급에 따라 대략 HK$190 안팎인데, 주말이나 성수기에는 표가 일찍 마감되니 왕복을 미리 끊어두면 마음이 편하다. 배 안에는 작은 매점이 있어 컵라면과 음료를 파는데, 위에서 먹은 신라면도 그 매점에서 산 것이다. 페리터미널에는 카지노·리조트행 무료 셔틀이 상시 다녀서, 목적지가 정해져 있으면 셔틀로 바로 넘어가면 된다. 요즘은 강주아오 대교를 지나는 버스로도 오갈 수 있으니, 최신 시간표와 요금은 터보젯 공식 페이지에서 확인하자.
마카오 기본 정보
홍콩과 마카오는 같은 중국 특별행정구지만 출입경이 따로라, 넘어갈 때 여권과 입국심사가 필요하다. 한국 여권이면 마카오도 무비자로 최장 90일 머물 수 있다(조건은 마카오 정부 입국 안내). 카지노는 만 21세 이상만 들어갈 수 있고 내부 촬영은 금지, 입장할 때 여권으로 신분과 나이를 확인하기도 한다. 도박을 안 해도 볼 게 많다. 에그타르트를 제대로 맛보려면 콜로안 섬의 로드 스토스 베이커리(안드류)가 원조로 유명하고, 반도 쪽 마가렛 카페도 늘 줄이 길다. 포르투갈 색이 짙은 세나도 광장과 성 바울 성당 유적, 좁은 옛 골목은 베네시안 같은 초대형 리조트와는 전혀 다른 마카오다. 당일치기라면 아침 일찍 페리로 들어가 코타이의 리조트를 둘러보고, 오후에 반도 쪽 구시가를 걸은 뒤 저녁에 홍콩으로 돌아오는 동선이 무난하다.
다녀와서
당일치기로 훑은 마카오는 홍콩과 붙어 있으면서도 전혀 다른 결의 도시였다. 실내에 하늘을 그려 넣은 초대형 리조트와 포르투갈 냄새가 남은 옛 골목이 한 도시에 공존한다. 카지노는 구경만 했지만, 그 열기를 곁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색다른 구경이었다. 다음엔 리조트 대신 세나도 광장과 성 바울 유적 쪽 구시가를 천천히 걷고, 콜로안까지 가서 원조 에그타르트를 맛보고 싶다.
다음 편은 사흘 뒤 도착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트윈타워 이야기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