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낭 하리라야 야시장, 비단뱀 목에 걸고 두리안 아이스크림 먹은 밤
Escape 파크에서 하루를 다 쓰고 나니 해가 저물고 있었다. 놀이 시설 하나하나를 다 타보느라 지쳐 있었는데, 친구들은 여기서 헤어질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숙소에 데려다주는 대신, 저녁을 먹으러 가자며 차에 태웠다. 다들 한국인인 나를 어디로 데려가야 재밌을지 고민을 많이 한 것 같았다. 그 고민의 결과가 쇼핑몰, 중국식당, 그리고 하리라야 야시장으로 이어지는 밤이었다.
실전 정보만 급하면 여기서 바로 내려가면 된다 — 라마단·하리라야 야시장 시즌 확인법 → · 클랜 제티 야간 방문 →. 우선은 그날 밤 이야기부터.
쇼핑몰에서, 두리안 아이스크림을 처음 먹었다
제일 먼저 들른 곳은 쇼핑몰이었다. Chatime 앞에서 친구들이 익숙하게 음료를 주문했다. 다들 뭘 먹었으면 좋겠냐고 물어봐서 손짓 발짓으로 아무거나 좋다고 했더니, 근처 테이크아웃 코너에서 스시와 김밥을 사다 줬다. 좁은 테이블에 둘러앉아 손으로 집어 먹었다.



그러다 누가 두리안 아이스크림을 하나 건넸다. 냄새부터 훅 끼쳐서 순간 멈칫했는데, 다들 먹어보라고 웃으며 지켜보고 있었다. 한 입 떠먹어 보니 맛은 나쁘지 않았다. 크리미하고 달았다. 다만 냄새가 정말 심했다. 그날 이후로 두리안은 딱 그 정도로만 남았다. 맛있지만 선호할 수 없는 과일. 그런데 신기하게도 11년이 지난 최근, 베트남 여행 중에 또 두리안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 그때 그 냄새가 떠올라서였는지, 아니면 그냥 궁금해서였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밥을 다 먹었다고 생각했는데, 친구들은 근처 중국식당으로 한 번 더 이끌었다. 이번에도 계산은 친구들 몫이었다. 손사래를 쳐도 다들 신경 쓰지 말라는 식이었다.

하리라야 야시장, 비단뱀을 목에 걸다
식당을 나오니 밤공기 사이로 조명이 화려한 게이트 하나가 보였다. 야시장 입구에 도착하자 다시 다 같이 셀카부터 찍었다.

게이트에는 하트 모양 네온과 함께 "SELAMAT HARI RAYA AIDILFITRI"라는 글씨가 걸려 있었다. 나중에 찾아보고서야 알았다. 그해 7월 초가 라마단이 끝나고 하리라야를 앞둔 시기였고, 야시장이 유독 화려했던 것도 그 시즌 때문이었다.

야시장을 걷다 보니 유리 진열장 안에 대형 비단뱀 몇 마리가 똬리를 튼 매대가 나왔다. 다들 겁도 없이 뱀을 들어 목에 걸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나도 얼결에 손을 얹어봤다가, 결국엔 목에 걸어보기까지 했다. 무서워서 어깨가 잔뜩 굳었는데, 동시에 이런 걸 직접 만져볼 일이 살면서 또 있을까 싶어서 신기했다.


야시장 안쪽에는 밀짚으로 만든 허수아비 커플과 하트 모양 장식으로 꾸민 포토존이 있었다. 친구들이 나란히 서서 브이를 그리길래, 나도 옆에서 같이 찍었다.

솜사탕 기계 앞에서는 다들 아이처럼 줄을 섰다. 부풀어 오르는 솜사탕을 구경하는 뒷모습들을 보고 있으니, 처음엔 놀랐던 이 호의가 어느새 익숙해져 있다는 걸 느꼈다. 낯선 나라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 이렇게까지 대접받는 게 얼떨떨했는데, 호의를 받으면서 친구가 되는 과정이 오히려 더 재밌었다. 나 역시 뭐라도 잘해주고 싶어서 서툰 말을 자꾸 걸었다. 해외에서 친구를 만드는 게 신기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심야의 제티에서 하루를 마감하다
야시장을 실컷 돌고 나니 자정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다 놀고 나서 숙소로 가는 길에 친구들이 잠깐 차를 세운 곳이 있었다. 붉은 네온으로 "JETTY"라고 적힌 간판이 어둠 속에서 빛나고 있었다. 조지타운의 성씨 부두마을, 클랜 제티였다. 바다는 완전히 캄캄했고, 저 멀리 불빛 몇 개만 물 위에 흔들리며 반사되고 있었다.

거기서 잠깐 서서 바다를 보다가, 친구들은 결국 숙소 앞까지 차로 데려다줬다. 하루 종일 놀이기구를 타고, 밥을 얻어먹고, 뱀을 목에 걸고, 자정 넘어 부두까지 다녀온 하루였다. 계획에 없던 하루였는데 돌아보면 그날 하루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라마단·하리라야 시즌 야시장
이슬람력을 따르는 라마단과 하리라야는 매년 날짜가 열흘 남짓씩 당겨진다. 내가 갔을 때는 라마단 종료와 하리라야 아이딜피트리를 앞둔 시기라 야시장이 유독 화려했다. 지금은 그 시기가 초봄 즈음으로 옮겨왔다. 페낭 여행을 계획한다면 그해 라마단·하리라야 달력을 먼저 확인하고, 그 시즌에 맞춰 가면 바자 라마단이라 불리는 야시장을 만날 수 있다. 스브랑 자야, 바얀 바루, 잘란 마클룸 등이 현지에서 꾸준히 꼽히는 곳들이다. 시즌이 아니어도 조지타운과 주변에는 상설 야시장이 곳곳에 있으니, 저녁 산책 삼아 들러볼 만하다.
클랜 제티 야간 방문
클랜 제티는 입장료 없이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열려 있는 게 공식 방문 시간이다.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활 공간이기도 해서, 너무 늦은 시간에 찾아가는 건 예의가 아니다. 낮에 가면 골목 사이사이 걸린 등불과 나무 부두, 벽화를 여유 있게 구경할 수 있고, 한 바퀴 도는 데 한 시간 반 정도면 충분하다. 그날 밤 우리는 자정 가까이 잠깐 들렀다 나온 거였지만, 지금 다시 간다면 낮 시간에 제대로 걸어보고 싶다.
다녀와서
돌이켜보면 이날 밤은 내가 뭘 하고 싶은지보다, 친구들이 나를 어디로 데려가고 싶어 하는지에 온전히 몸을 맡긴 하루였다. 두리안 아이스크림도, 비단뱀도, 자정 넘은 부두도 내가 계획했다면 절대 넣지 않았을 일정이다. 그런데 그렇게 남이 이끄는 대로 따라간 하루가 여행에서 가장 선명하게 남았다. 낯선 나라에서 이렇게 호의를 받아본 게 신기해서, 나도 그만큼 돌려주고 싶어 서툰 영어로 자꾸 말을 걸었던 밤이었다.
다음 편은 이 친구들과 보낸 마지막 날, 라멘집에서의 헤어짐과 쿠알라룸푸르행 비행기다.
이 편은 세계일주 시리즈의 10편이다. 앞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홍콩 첫날부터 순서대로 볼 수 있다 — 홍콩 여행 첫날, 피크트램 타고 빅토리아피크 야경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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