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아 떠나는 날, 아테네행 버스 대신 로마행 비행기를 끊었다
다음 목적지가 정해져 있지 않은 채로 잠들었다가, 아침에 일어나서 정했다. 계획이 없어서 불안했던 게 아니라, 계획이 없어야 이런 선택이 가능했다.
바쁘면 실전 정보부터 — 소피아 시내에서 공항 가는 법 → · 발칸에서 다음 도시 고르는 기준 →. 우선은 그날 아침의 계산부터.
이만 오천 원이 목적지를 바꿨다
원래는 아테네였다. 발칸을 남쪽으로 훑어 내려가는 그림이었고, 소피아 다음은 그리스가 자연스러웠다.
문제는 이동 수단이었다. 버스로 열두 시간, 값은 칠만 오천 원. 열두 시간이라는 숫자를 보자마자 몸이 먼저 싫다고 했다. 앞선 구간에서 이미 야간 이동으로 몇 번 고생한 뒤라 더 그랬다.
혹시나 해서 항공편을 뒤졌다. 다음 날 출발하는 로마행이 십만 원이었다.
계산이 끝나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표를 끊었다. 항공사 이름은 처음 듣는 것이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탈리아 국적기였다. 저가항공인 줄 알고 예약했다가 기내에서 무료로 차와 스낵이 나와서 혼자 놀랐다.
그렇게 발칸 남하 계획이 하루 만에 접혔다. 아테네는 이 여행 후반부에 결국 가긴 했지만, 그건 한참 뒤의 일이다.
이틀 동안 십만 원을 썼다
떠나기 전에 지갑을 한 번 정리했다. 여행이 길어지면 돈이 어디로 새는지 감이 무뎌지는데, 이날은 종이에 적어봤다.
| 항목 | 금액 |
|---|---|
| 공항 왕복 택시 | 13유로 |
| 이틀 숙소 | 34.2레바 (약 17유로) |
| 음료 세 번 | 6레바 |
| 투어 팁 | 2유로 |
| 샌드위치 | 3레바 |
여기에 안 쓰고 남은 67레바를 더하니 불가리아에서 쥐고 있던 돈이 십만 원 남짓이었다. 이틀을 지냈으니 하루 삼만 오천 원꼴이다. 도보투어 두 개와 푸드투어를 돌고, 바 투어를 따라가고, 숙소를 두 곳이나 썼는데도 그랬다.
적어놓고 나서 든 생각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소피아가 정말 싸다는 것. 다른 하나는 택시가 제일 큰 지출이었다는 것이다. 공항 오갈 때 탄 택시 한 번이 이틀 숙소값에 맞먹었다. 이날 공항 갈 때 지하철을 택한 건 그 계산 때문이었다.
마지막 끼니도 조각피자였다

가기 전에 동네 베이커리를 한 번 더 들렀다. 진열대의 큼직한 원형 피자를 조각으로 잘라 파는데, 한 조각이 손바닥보다 컸다.
이걸 들고 길에서 먹는 게 소피아에서 익힌 방식이었다. 앉을 자리를 찾지 않아도 되고, 값도 커피 한 잔보다 쌌다. 며칠 사이 이 도시의 리듬에 꽤 익숙해졌다는 걸 이럴 때 느꼈다.
아이스크림 하나를 더 물고 나서야 배가 찼다. 검은 코팅에 쿠키 조각이 박힌 바였는데, 더운 날 걷다가 하나씩 사 먹기 좋았다.
한국에서 못 보던 맛이 눈에 띄면 일단 집었다. 체리 향이 나는 콜라도 그렇게 샀다. 맛은 예상대로였고, 그래도 캔 디자인이 예뻐서 사진을 한 장 남겼다.

공항까지 지하철 한 번이면 끝이었다

소피아 공항은 지하철이 터미널 바로 앞까지 들어간다. 시내 중심에서 갈아타지 않고 한 번에 간다.
개찰구를 지나는 데 배낭이 걸려 한 번 버벅였다. 뒤에 서 있던 사람이 웃으면서 기다려줬다. 큰 배낭을 메고 대중교통을 타는 건 늘 이런 잔펀치가 있는데, 그날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승강장 천장이 붉은 곡선이었다. 역마다 색을 달리 쓴 모양인지, 앞서 지나온 역들과 인상이 달랐다. 소피아 지하철은 노선이 단순해서 길을 잃을 구석이 없다.

객차는 한산했다. 배낭을 발밑에 세워놓고 손잡이에 기대 있었는데, 열차가 조용해서 창밖 소리가 다 들렸다.

지상 구간으로 나오자 창밖이 밝아졌다. 시내를 벗어나니 아파트가 낮아지고 곧 들판이 나왔다.

들판 옆에 붙은 공항

터미널을 나서기 전 마지막으로 본 소피아 풍경이 들판이었다. 활주로 담장 너머로 초원이 그대로 이어졌고, 그 위에 유리 건물 하나가 덩그러니 서 있었다.
카운터는 열네 번, 열다섯 번이었다. 줄이 짧아서 금방 부쳤다. 유럽에서 이렇게 여유로운 공항은 이 뒤로 한동안 못 만났다.

안내판에 편명이 떴을 때야 실감이 났다. 저녁 일곱 시 스무 분 출발. 어제 새벽에 지도를 펴놓고 고민하던 게 하루도 안 지났는데, 이제 로마로 간다.

소피아 시내에서 공항 가는 법
지하철이 가장 싸고 확실하다.
- 지하철 M4(구 M1 연장) 노선이 소피아 공항 터미널 2까지 직결된다. 시내 중심 세르디카역에서 갈아타지 않고 간다. 소요는 20분 안팎.
- 1회권 요금은 1유로 안쪽이다. 24시간권·72시간권도 있어서 시내에서 며칠 다닐 계획이면 그쪽이 낫다.
- 터미널 1을 쓰는 항공사라면 지하철역이 터미널 2에 있으니 무료 셔틀버스로 한 번 더 이동해야 한다. 저비용 항공사가 터미널 1을 쓰는 경우가 있으니 예약 확인서에서 터미널을 미리 봐두는 게 좋다.
- 택시는 시내까지 대략 15~20유로 선인데, 공항 정식 카운터에서 배차받는 게 안전하다. 호객하는 기사를 따라가면 몇 배를 부르는 일이 흔하다.
불가리아는 2026년 1월부터 유로를 쓴다. 남은 레바 지폐가 있으면 은행에서 계속 무료로 바꿔준다.
발칸에서 다음 도시 고르는 기준
소피아는 사방으로 열려 있어서 다음 목적지 선택지가 넓다. 대신 그만큼 헷갈린다. 실제로 비교해보면 판단 기준은 단순해진다.
- 육로 vs 항공의 손익분기점을 시간으로 잡는다. 야간버스로 10시간 넘게 가야 한다면, 항공권 값이 두세 배가 아닌 이상 비행기가 이긴다. 버스에서 못 잔 다음 날은 통째로 날아가고, 그 하루의 숙박비·식비까지 계산에 넣어야 공평하다.
- 소피아 공항은 저비용 항공사 노선이 촘촘하다. 로마·밀라노·바르셀로나·런던 같은 서유럽 주요 도시로 직항이 있고, 하루 이틀 전에 봐도 십만 원대가 나오는 구간이 많다.
- 육로가 확실히 나은 구간도 있다. 플로브디프·벨리코터르노보 같은 불가리아 국내나, 니시·스코페처럼 가까운 발칸 도시는 버스가 더 빠르고 싸다.
계획을 미리 다 짜두지 않으면 이런 선택을 그때그때 할 수 있다. 대신 표값이 비싸질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데, 비수기나 이 지역처럼 노선 경쟁이 있는 구간에서는 그 위험이 생각보다 작았다.
다녀와서
떠나는 날 아침에 목적지를 정하는 여행이 늘 좋은 건 아니다. 그래도 이날은 그 방식이 맞아떨어졌다.
소피아는 짧게 스친 도시였는데도 지금까지 또렷하다. 발밑의 로마 유적, 그늘진 안뜰, 새벽 라운지의 긴 대화, 그리고 손바닥만 한 조각피자. 다음에 발칸을 다시 간다면 여기부터 시작해서 이번엔 육로로 천천히 내려가 보고 싶다.
다음 편은 로마다. 밤에 도착해 아침 여섯 시부터 걷기 시작한 첫날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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