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바이 마지막 날, 침대에 그동안 받은 것들을 다 펼쳐놓았다

두바이에서 나흘째 되는 아침, 처음으로 혼자 쓰는 방에서 일어났다. 전날 사막에서 돌아와 공항 근처 호텔에 묵은 참이었다. 창밖에는 주차장과 낮은 건물뿐이었다.

호텔 창밖으로 보이던 아침의 주차장
실전 정보만 급하면 여기서 바로 내려가면 된다 — 여행 중에 뭘 남겨둘까 → · 두바이 출국, 공항 가는 법 →. 우선은 그날 이야기부터.

조식 뷔페 앞에서 마음이 급했다

호텔에는 조식이 딸려 있었다. 나흘 만에 제대로 된 아침이었다.

접시를 들고 한 바퀴 도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급했다. 라마단이라 낮에 먹을 곳을 못 찾아 헤맨 사흘이 몸에 남아 있었던 것 같다. 결국 평소보다 훨씬 많이 담았다. 스크램블에 베이컨, 요거트, 빵까지.

스크램블과 베이컨, 요거트를 담은 조식 접시
호텔 조식 뷔페 진열대

과일은 접시를 따로 챙겼다. 수박이며 멜론이며 포도를 한가득 담아놓고 보니 좀 웃겼다. 며칠 전까지 몰 안 천막에서 눈치 보며 먹던 사람이 갑자기 뷔페 접시를 두 개 들고 있었다.

과일만 따로 담은 접시

침대 위에 다 꺼내놓았다

체크아웃까지 시간이 남았다. 배낭을 정리하는데 주머니마다 종이가 나왔다.

두바이가 아시아 구간의 끝이었다. 홍콩에서 시작해 마카오, 쿠알라룸푸르, 페낭, 콜롬보, 미리사, 갈레를 지나 여기까지 왔고, 다음은 유럽이었다. 짐을 한 번 줄여야 하는 지점이었다.

그래서 침대 위에 전부 꺼내 늘어놓았다.

침대 위에 펼쳐놓은 영수증과 티켓, 명함과 지도

각도를 바꿔 한 장 더 찍었다. 그때는 그냥 기록해두고 싶었을 뿐인데, 십일 년이 지난 지금 이 사진이 그 여행의 가장 정확한 목록이 됐다.

각도를 바꿔 다시 찍은 수집품 전체

종이 한 장마다 하루가 붙어 있었다

늘어놓고 보니 여정이 그대로 복원됐다.

6월 28일 인천에서 홍콩으로 가는 탑승권. 이게 이 여행의 첫 장이다. 이걸 손에 쥐던 날 나는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 하나도 몰랐다.

홍콩에서 마카오로 가는 페리표. 164홍콩달러. 좌석 12A까지 찍혀 있다.

AK137. 홍콩에서 쿠알라룸푸르로 넘어간 새벽 비행기다. 그 편명이 한 편의 제목이 될 줄은 몰랐다.

7월 2일 목요일 오전 9시 반, 좌석 10C, 60링깃. 쿠알라룸푸르에서 페낭으로 가는 버스표다. 안내소 직원이 종이에 적어준 대로 찾아간 그 버스가 이렇게 남았다.

2.70링깃짜리 페낭 시내버스 표도 있다. 그 동네를 며칠 돌아다니며 몇 번을 탔는지 이 표 한 장으로는 알 수 없지만, 하나는 챙겨뒀다.

손으로 쓴 메모 한 장. 출라 스트리트, 헤리티지 워크, 아예르 이탐, 극락사. 누가 적어준 페낭 동선이다. 글씨가 내 것이 아니다.

콜롬보 숙소 영수증. 7월 5일부터 7일까지 2박에 2,200루피. 도장이 찍혀 있고 이름이 손으로 적혀 있다. 명함 뒷면에도 누군가의 이름과 번호가 있는데, 지금은 그게 누구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때는 분명 적어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미리사 숙소 명함. 비행기를 놓친 날 아침에 챙긴 그 명함이다. 찾아보니 그 숙소는 지금도 있다. 그때는 공사 중이라 막 문을 연 참이었는데, 지금은 해변점과 공항점을 둔 체인이 됐다.

페트로나스 트윈타워 입장권. 올라가 보고 다음엔 안 가기로 했던 그 전망대다. 그때 8x링깃이었는데 지금은 127링깃이다.

콜롬보 국립박물관 입장권 600루피. 여기서 문제가 하나 생긴다. 이 표가 있다는 건 내가 그 박물관에 갔다는 뜻인데, 안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표는 남았고 기억은 안 남았다.

졸리비 대기표 0848. 7월 10일 오후 6시 7분. 이 도시에 도착한 첫날, 몰에서 밥 먹을 데를 찾아 헤매다 뽑은 번호다.

작은 코끼리 열쇠고리 하나. 갈레에서 하루를 같이 다닌 친구가 준 것이다. 이름이 정확했는지도 이제 자신이 없는데, 이 열쇠고리는 남았다.

두 종류로 갈렸다

늘어놓고 보니 물건이 두 갈래였다.

하나는 내가 챙긴 것들이다. 표, 영수증, 입장권. 나중에 쓸모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버리지 않고 모았다. 실제로 쓸모가 있었다. 지금 이 글들의 날짜와 금액은 전부 이 종이에서 나왔다.

다른 하나는 받은 것들이다. 누가 적어준 메모, 명함 뒷면의 손글씨, 열쇠고리. 이건 내가 모은 게 아니라 사람들이 준 것이다. 사실 침대에 이만큼 쌓인 이유도 그동안 받은 게 많아서였다.

원래 기록하고 메모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그 습관이 없었으면 이 여행은 사진 몇 장으로만 남았을 것이다. 반대로 받은 것들이 없었다면 이 여행은 혼자 다닌 기록이 됐을 것이다. 두 무더기가 같이 있어야 그 여행이 된다.

다시 그 공항으로

짐을 챙겨 메트로를 탔다. 나흘 전 새벽에는 역이 닫혀 있어 못 탔던 그 노선이다.

공항으로 가는 두바이 메트로 안

마지막 구간은 버스였다. 창밖으로 다시 모래가 지나갔다. 나흘 전에는 이 풍경이 낯설었는데 이제는 그러려니 했다.

버스 창밖으로 지나가던 사막
공항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나흘 만에 같은 공항으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낮이었는데도 사람이 많지 않았다.

텅 빈 공항 내부 통로
나흘 만에 다시 온 두바이국제공항

남은 디르함으로 햄버거를 하나 시켰다. 환전한 돈을 남겨서 가면 다음 나라에서 쓸 데가 없다. 마지막 끼니는 늘 남은 현지 돈을 털어내는 식사가 된다.

공항에서 먹은 맥도날드 트레이

게이트 앞 빨간 의자에는 아무도 없었다. 여기 앉아 유럽행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나흘 전 이 도시에 도착했을 때와 지금이 얼마나 다른지 생각했다. 그때는 밥 먹을 데를 못 찾아 헤맸고, 지금은 배낭 무게를 줄이려고 종이를 버릴지 말지 고민하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게이트의 빨간 의자들

결국 하나도 못 버렸다. 그래서 지금 이 글을 쓸 수 있다.

여행 중에 뭘 남겨둘까

십 년 넘게 지나서 여행기를 쓰게 될 줄은 몰랐지만, 결과적으로 남겨두길 잘한 것들이 있다.

탑승권과 교통표. 날짜·편명·좌석·요금이 다 적혀 있다. 기억은 흐려져도 이건 안 변한다. 여정을 복원할 때 가장 정확한 자료가 됐다.

숙소 영수증. 며칠을 얼마에 묵었는지 남는다. 물가 비교 글을 쓸 때 근거가 된다.

입장권. 그때 얼마였는지가 남는다. 지금 요금과 비교하면 그 자체로 이야깃거리다.

받은 것. 누가 적어준 메모, 명함, 작은 선물. 이건 값으로 매길 수 없고 대체할 방법도 없다.

요즘은 대부분 모바일 티켓이라 종이가 안 남는다. 대신 예약 메일과 결제 내역은 남으니 여행용 메일 라벨을 하나 만들어두면 비슷한 역할을 한다. 사진으로 찍어두는 것도 방법이다. 나는 종이를 침대에 늘어놓고 한 장 찍었는데, 결국 그 사진이 원본보다 오래 남았다.

두바이 출국, 공항 가는 법

두바이국제공항(DXB)은 메트로 레드라인으로 연결된다. 다만 1·3터미널만 역이 붙어 있고 2터미널은 따로 떨어져 있다. 저비용 항공사가 2터미널을 많이 쓰니 항공권에 찍힌 터미널을 먼저 확인해야 한다. 2터미널로 가야 하면 셔틀버스나 시내버스, 택시를 타야 한다.

체크인은 대체로 출발 3시간 전에 열리고 1시간 전쯤 닫힌다. 성수기나 새벽 시간대에는 출국장 줄이 길어지니 넉넉히 잡는 편이 낫다.

남은 디르함은 공항에서 털고 가는 게 낫다. 두바이 밖에서는 쓸 데가 거의 없고 재환전도 손해다. 공항 안 식당과 편의점에서 소액 현금을 받으니 마지막 식사나 물, 간식으로 정리하면 된다.

여기까지가 아시아 구간이다. 다음 편부터는 유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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