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바이 도미토리에서 만난 사람들, 그리고 사막 위 스키장
두바이에서 묵은 곳은 도미토리였다. 스리랑카 공항에서 밤을 새우며 골라둔, 부르즈 할리파에서 걸어갈 만한 거리의 싼 방이었다. 그런데 들어가 보니 여행자는 나 하나였다.
나 빼고 전부 노동자였다
침대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좁은 방에 이층 침대가 들어찰 수 있는 만큼 들어차 있고 그 위에 사람들이 누워 있었다. 관광객이 묵는 숙소가 아니라 이 도시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잠만 자러 들어오는 방이었다.
레바논, 폴란드, 말레이시아, 시리아, 이라크. 한방에서 만난 사람들의 출신지다. 대부분 돈을 벌러 두바이에 온 사람들이었고 그 사이에서 나만 여행자였다.
시리아에서 온 사람과 나눈 이야기는 잡담이 아니었다. 그때 시리아는 내전 4년차였다. 뉴스에서 매일 나오던 그 나라에서 온 사람이 내 옆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는 난민으로 온 게 아니었다. 일하러 왔다. 걸프 국가들은 난민 지위를 거의 주지 않는 대신 노동 비자로 사람을 받는다. 그러니까 이 방에 있는 사람들은 서류상 다 같은 신분이었다. 파견 노동자. 그 이름 아래에 저마다 다른 사정이 깔려 있었을 뿐이다.
이라크에서 온 사람은 자기 나라의 부정부패 이야기를 담담하게 했다. 화를 내지도 않고 하소연하지도 않았다. 담담한 쪽이 오히려 무거웠다.
돌아보면 그 방은 이 도시가 어떻게 굴러가는지를 압축해놓은 곳이었다. 부르즈 할리파도 두바이몰도 저절로 서 있는 게 아니다. 세우고 닦고 지키는 사람들이 어딘가에서 자야 하고, 그 어딘가가 여기였다. 나라를 떠나온 이유는 제각각인데 도착한 방은 하나였다.
나는 비행기를 놓쳐서 하루 늦게 왔다는 얘기밖에 할 게 없었는데, 그게 얼마나 사치스러운 불행인지 그 방에서 알았다.
낮에 올려다본 부르즈 할리파와 밤에 돌아온 이 방이 같은 도시에 있었다. 그 건물을 세우고 유지하는 사람들이 어디서 자는지를 나는 그 방에서 봤다.
라마단이라 낮에 마음 놓고 먹기가 어려웠고 해가 지고 나서야 도시가 열렸다. 그래서 방으로 돌아오면 늘 늦었다. 컵라면을 끓인 게 새벽 한 시가 넘어서였다.

사막 위에 스키장이 있다
다음 날은 늦게 나섰다. 어차피 낮에 갈 데는 몰뿐이었다.
가는 길에 대형마트에 들렀다. 입구에 라마단 배너가 걸려 있었다. 금식이 끝나는 저녁 시간에 맞춘 할인 행사 안내였는데, 이 나라에서 라마단이 종교 행사이자 상업 시즌이기도 하다는 걸 그때 알았다.

이날 간 곳은 에미리츠몰이다. 전날 갔던 두바이몰과는 다른 몰이다. 목적은 하나였다. 사막 한복판에 실내 스키장이 있다는 얘기를 확인하는 것.
몰 안을 걷다 보니 금빛으로 칠한 낙타가 서 있었다. 이 도시는 뭐든 금색으로 한 번 칠해보는 것 같았다.

스키두바이 입구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스키복을 챙겨 입고 줄을 서 있었다. 바깥은 40도가 넘는 사막인데 여기서는 방한복을 빌리고 있었다.


나는 표를 끊지 않았다. 대신 유리벽 밖에서 한참을 구경했다. 안쪽에는 진짜 슬로프가 있고 사람들이 스키를 타고 내려왔다. 리프트도 돌아갔다. 유리 안쪽에는 펭귄까지 살고 있었다.



유리 안쪽 눈밭에 살던 펭귄들
돈을 들여 사막에 눈을 만들고, 그 눈 위에 펭귄을 들여놓았다. 감탄과 어이없음이 같이 왔다.
모래바람이 도시를 지웠다
몰에서 나오는 길에 창밖을 봤는데 도시가 사라져 있었다. 모래바람이었다.
전날까지 선명하던 고층 빌딩들이 우유를 부은 것처럼 뿌옇게 지워져 있었다. 부르즈 알 아랍 같은 큰 건물조차 윤곽만 겨우 남았다. 사막 위에 세운 도시라는 게 이럴 때 드러났다. 아무리 유리와 철로 덮어도 모래는 그냥 위로 지나간다.


지하철로 이동하면서는 맨 앞칸에 섰다. 두바이 메트로에는 운전석이 없다. 무인 운행이라 맨 앞칸에 서면 선로가 그대로 보였다.
운전석이 없는 무인 열차. 맨 앞칸에서 본 선로
푸드코트에서 만난 두 사람
몰 안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라마단이라 낮에 문 연 곳은 여기뿐이었다. 핫도그에 스파게티에 치킨까지 한 트레이에 담았다.

자리를 찾고 있는데 누가 먼저 말을 걸었다. 가나에서 온 두 사람이었다. 같이 앉아도 되겠냐고 물었고, 그렇게 식탁을 함께 쓰게 됐다.

그 친구가 사고 싶어 한 건 금색으로 도배된 아이폰이었다. 진열장에 그런 게 실제로 있었다. 이 도시에 온 목적이 그거라고 했다. 나는 몇만 원짜리 도미토리에서 자고 있었고 그는 금색 휴대폰을 보러 왔는데, 우리는 같은 푸드코트에서 같은 트레이를 놓고 앉아 있었다.
한참을 떠들다 같이 몰을 돌았다. 서점에 들러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스리랑카 공항에서 밤을 새우며 읽던 원서가 슬슬 끝나가던 참이었다. 폭포 앞에서는 서로의 사진을 찍어줬다.



헤어질 때 그가 남긴 말이 지금도 종종 떠오른다. "인생을 즐겨."

십일 년 뒤에 온 알림
이 이야기에는 뒷부분이 있다.
십 년 넘게 아무 일 없이 지나갔는데, 올해 7월 어느 날 그 친구가 페이스북에 사진을 올렸다. 왼쪽에는 2015년 두바이몰에서 우리 둘이 악수하는 사진, 오른쪽에는 지금의 그가 파리 에펠탑 앞에 서 있는 사진. 제목은 "11 years later"였다.
올린 날짜가 7월 10일이었다. 우리가 만난 게 정확히 그 무렵이다. 십일 년 동안 연락 한 번 없었는데 같은 날짜를 기억하고 있었던 셈이다. 나는 댓글에 "Sweet pic"이라고만 달았다.

지금 그는 가나에서 교회를 이끈다. 온라인으로 예배와 기도회를 중계하는 사역자가 됐다. 금색 아이폰을 보러 두바이에 왔던 사람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나는 그 게시물로 알았다.
여행에서 만난 사람은 대부분 그날로 끝난다. 그게 자연스럽고 서운할 일도 아니다. 다만 아주 가끔 이렇게 십 년을 건너뛰어 알림 하나로 돌아오는 사람이 있다.
만오천 원짜리 버거
두바이 물가는 그때도 만만치 않았다.
진열장에는 금으로 도금한 휴대폰 케이스가 줄지어 있었다. 그 옆 매장 유리 안에는 온통 금빛인 람보르기니 한 대가 서 있었다.


그런 걸 구경하다 저녁으로 쉑쉑버거를 먹었다. 버거 하나에 쉐이크 하나였는데 만오천 원이 나왔다.

학교 앞에서 천오백 원 주고 먹던 밀크쉐이크가 떠올랐다. 같은 밀크쉐이크인데 열 배였다. 맛있긴 했는데 매일 이렇게 먹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수첩을 꺼내 숫자를 적었다. 하루에 얼마를 쓰고 있는지, 남은 나라가 몇 개인지. 여행이 길어지면 돈 계산이 습관이 된다.

그날도 늦게 방으로 돌아왔다. 그 방에서 마지막으로 마신 건 얼그레이 한 잔이었다.

사막 위 실내 스키장, 스키두바이
에미리츠몰 안에 있고 메트로 몰 오브 디 에미리츠역과 바로 연결된다. 슬로프 다섯 개에 실내 온도는 영하로 유지되며 방한복과 부츠는 입장료에 포함된다. 스키·스노보드 장비도 빌릴 수 있고, 슬로프를 안 타고 눈밭에서만 노는 스노파크 옵션이 따로 있다.
펭귄은 진짜로 산다. 정해진 시간에 펭귄이 슬로프에 나오는 프로그램이 있고, 추가 요금을 내면 가까이서 보거나 만지는 체험도 운영한다.
표를 안 끊어도 유리벽 밖에서 슬로프와 리프트가 다 보인다. 나는 그렇게 구경만 했는데 그것만으로도 볼 만했다. 몰 자체는 무료라 지나가는 길에 들르기 좋다.
라마단에 두바이 물가 버티기
두바이에서 돈이 가장 빨리 새는 곳은 식비다. 낮에 문 연 곳이 몰 안뿐이면 선택지가 푸드코트와 체인점으로 좁아지고 그쪽은 대체로 비싸다.
내가 쓴 방법은 단순했다. 마트에서 물과 먹을 것을 사두고 숙소에서 해결하는 것. 대형마트는 라마단에도 정상 영업하고 오히려 저녁 시간대에 할인 행사를 한다. 숙소에 주방이 있으면 훨씬 낫다.
숙소도 마찬가지다. 부르즈 할리파 근처 호텔은 비싸지만 조금 벗어난 지역의 도미토리는 몇만 원대다. 다만 내가 묵은 곳처럼 관광객용이 아닌 방일 수도 있다. 예약 전에 후기를 보면 어떤 사람들이 묵는 곳인지 대충 짐작이 간다. 나는 그 방이 불편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 여행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밤이 됐지만, 조용히 쉬려고 가는 사람이라면 이야기가 다를 것이다.
다음 편은 사막이다. 오프로드로 모래언덕을 넘고 낙타를 타고, 모래바람 속에서 저녁을 먹은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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