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마단의 두바이 첫날, 세계 최대 쇼핑몰 한가운데 천막이 있었다

새벽 다섯 시가 조금 넘어 두바이에 내렸다. 원래대로면 하루 전에 왔어야 할 비행기였다. 도착장은 넓고 조용했고, 통로를 걷는 사람이 나 말고 몇 없었다.

새벽 다섯 시의 두바이국제공항 도착장, 통로에 사람이 거의 없다
실전 정보만 급하면 여기서 바로 내려가면 된다 — 라마단 기간에 두바이를 여행한다면 → · 공항에서 시내까지, 메트로 타는 법 →. 우선은 그날 이야기부터.

셔터가 내려간 도시

공항 밖으로 나오자 새벽인데도 공기가 뜨뜻했다. 택시 승강장 너머로 야자수가 서 있고 하늘은 아직 푸르스름했다. 도로는 넓은데 차가 없었다.

공항 밖으로 나오자 보이던 야자수와 푸르스름한 새벽 하늘

시내로 들어가면서야 이상한 걸 알아챘다. 문을 연 가게가 거의 없었다. 아침이라 그런가 싶었는데 낮이 되어도 마찬가지였다. 라마단이었다.

이슬람력으로 아홉 번째 달, 해가 떠 있는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않는 기간이다. 알고는 있었지만 그게 여행자에게 어떻게 닥치는지는 몰랐다. 식당은 대부분 닫혀 있었고, 문을 연 곳도 안이 보이지 않게 가려두었다. 길에서 물을 마시는 사람도 없었다. 이 도시에서 낮에 밥을 먹는다는 게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었다.

걸어서 역까지 갔는데, 역도 닫혀 있었다

택시를 잡으면 편했겠지만 요금이 아까웠다. 지도를 보니 메트로역이 걸어갈 만한 거리에 있길래 짐을 끌고 그쪽으로 걸었다. 곡선으로 휜 지붕이 사막 한가운데 우주선처럼 놓여 있는 모양새였다.

곡선으로 휜 지붕이 얹힌 두바이 메트로역 외관

그런데 역도 셔터가 내려가 있었다. 새벽인 데다 그날은 금요일이었다. 이슬람권에서 금요일은 우리의 일요일 같은 날이라 도시가 늦게 깨어난다. 하필 라마단에 금요일 새벽이었던 셈이다.

역 앞에서 붙잡고 있던 건 지도였다. 벽에 붙은 노선도를 사진으로 찍고, 비치대에 남아 있던 종이 지도도 몇 장 집었다. 붉은 바탕에 노선이 그려진 교통 지도, 시간표가 빼곡한 안내판, 메트로 노선도까지 세 장. 물어볼 사람이 없을 때는 지도가 유일한 안내인이 된다.

역에 붙어 있던 두바이 통합 교통 노선도

결국 근처 주유소에서 교통카드를 하나 사서 버스를 탔다. 첫 도시에서 카드를 사고 노선을 맞추는 데 두 시간 가까이 썼다. 창밖을 보는데 도로가 텅 비어 있었다. 왕복 여섯 차선이 넘는 길에 차가 드문드문 다녔고, 그 양옆으로 유리로 덮인 건물이 하늘까지 뻗어 있었다. 목이 아플 만큼 올려다봐야 꼭대기가 보였다. 사람은 안 보이는데 건물만 계속 커지는 도시였다.

노란 손잡이가 늘어선 두바이 시내버스 안
차가 거의 없는 넓은 도로와 양옆으로 솟은 고층 빌딩

결국 몰로 갔다

낮에 갈 데가 마땅치 않았다. 밖은 뜨겁고 가게는 닫혔고, 문을 연 곳은 몰뿐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두바이몰로 갔다. 세계에서 제일 크다는 그 쇼핑몰이다.

들어서자 천장이 뻥 뚫린 원형 홀이 나왔다. 사람이 많았다. 도시 전체가 여기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두바이몰 중앙의 원형 돔 천장

한 층 내려가니 벽이 통째로 수조였다. 두바이 아쿠아리움이다. 사람 키의 몇 배는 되는 유리 너머로 가오리가 지나가고 상어가 돌아다녔다. 표를 사서 안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이 벽면은 그냥 볼 수 있다. 나는 한참을 그 앞에 서 있었다.

벽 하나가 통째로 수조인 두바이 아쿠아리움

조금 더 걸으니 이번엔 공룡 뼈가 서 있었다. 홀 한가운데 진짜 화석이 통째로 세워져 있고, 그 위로 몰 천장이 뚫려 있었다. 쇼핑몰 안에 공룡이 있는 게 이상하다는 생각이 그때는 안 들었다. 이 도시에서는 그 정도가 놀랄 일이 아니었다.

쇼핑몰 홀 한가운데 세워진 공룡 화석

한쪽에는 아랍풍으로 꾸민 구역이 따로 있었다. 아치가 이어진 통로에 낙타 조형물이 서 있고, 캘리그라피를 넣은 액자가 걸려 있었다. 사막의 시장을 실내에 옮겨놓은 셈인데, 정작 진짜 사막에 나가본 건 이틀이 더 지나서였다.

아랍풍으로 꾸민 수크 구역, 아치 통로에 낙타 조형물이 서 있다

가장 오래 서 있었던 건 인공폭포 앞이었다. 몇 층 높이에서 물이 쏟아지고, 그 물줄기 사이로 다이빙하는 사람 모양의 조형물이 매달려 있었다. 물은 계속 떨어지는데 사람은 영원히 떨어지지 않는다.

몰 안 인공폭포와 물줄기 사이에 매달린 다이빙하는 사람 조형물

걷다 보면 별의별 가게가 다 나왔다. 파티용품점 진열대에는 사람 얼굴 가면이 줄줄이 걸려 있고, 그 옆에서 해골 인형이 상자를 여닫으며 혼자 움직이고 있었다. 쇼핑몰 하나를 다 도는 데 하루가 모자랐다.

몰 안 파티용품점에서 혼자 움직이던 해골 인형

몰 한가운데 천막이 있었다

배가 고팠다. 아침부터 제대로 먹은 게 없었다.

그런데 몰 안 식당들도 상당수가 닫혀 있거나 안을 가려놓았다. 라마단은 몰 안까지 들어와 있었다. 한참을 돌다가 홀 가운데에 쳐놓은 천막을 발견했다. 임시로 세운 구조물 안에 테이블이 놓여 있고, 사람들이 거기 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대부분 외국인이었다.

아랍어와 영어가 병기된 몰 안내판, 그 아래 붐비던 푸드코트

금식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따로 마련한 자리였다. 밖에서는 안 보이도록 가려두고, 안에서는 먹을 수 있게 해둔 공간. 그러니까 이 도시는 낮에 먹는 사람을 금지한 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으로 옮겨둔 것이었다.

거기서 늦은 끼니를 해결했다. 아랍어 간판이 걸린 패스트푸드점에서 치킨버거를 하나 시켜 자리에 앉았다. 메뉴판 사진과 실물이 꽤 비슷했다. 그날 저녁에는 대기표를 뽑고 줄을 서서 또 한 번 먹었다. 여섯 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는데, 이미 사람들이 길게 서 있었다. 해가 지기를 기다리는 줄이기도 했을 것이다.

몰에서 마신 아이스티 한 잔
손에 든 대기표 0848, 뒤로 줄이 늘어선 매장
아랍어 간판이 걸린 패스트푸드점에서 시킨 치킨버거 세트

솔직히 그날은 조금 굶었다. 화려한 도시에 와서 제일 먼저 배운 게 밥 먹을 데 찾는 법이라는 게 우스웠는데, 지나고 보니 그게 라마단을 몸으로 이해한 방식이었다. 남이 굶는 동안 나만 편하게 먹을 수는 없다는 감각. 규칙으로 배우는 것보다 그쪽이 오래 남았다.

물이 솟구치던 밤

해가 지자 도시가 깨어났다. 낮 내내 닫혀 있던 가게들이 문을 열고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몰 밖으로 나가니 부르즈 할리파가 서 있었다. 사진으로 본 것보다 훨씬 얇고 높았다. 꼭대기를 보려면 고개를 완전히 젖혀야 했는데, 그러고도 끝이 어디인지 잘 가늠이 안 됐다.

아래에서 올려다본 부르즈 할리파

건물 앞은 인공 호수였다. 물가 난간에 사람들이 빽빽하게 서 있길래 나도 자리를 잡았다.

분수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던 시간

잠시 뒤 음악이 시작되고 물이 솟구쳤다. 분수쇼였다.

물줄기가 음악에 맞춰 좌우로 휘고, 한 번씩 곧게 위로 치솟았다. 뒤로는 부르즈 할리파가 조명을 받아 서 있었다. 그 앞에서 사람들이 저마다 사진을 찍었다. 나도 꽤 여러 장을 찍었다. 지금 보면 비슷한 사진이 열 장 넘게 있는데, 그만큼 오래 서 있었다는 뜻이다.

음악에 맞춰 곧게 솟구친 분수 물줄기

음악에 맞춰 물이 솟구치던 두바이 분수쇼

부르즈 할리파 앞 인공 호수에서 시작된 두바이 분수쇼

낮에는 밥 먹을 데를 못 찾아 헤맸는데 밤에는 이런 걸 공짜로 보고 있었다. 하루 안에 두 도시를 다녀온 것 같았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갔다

메트로를 타고 숙소로 갔다. 스리랑카 공항에서 밤을 새우며 골라둔 그 도미토리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서야 여기가 어떤 곳인지 알았다. 침대가 다닥다닥 붙어 있고, 그 위에 사람들이 누워 있었다. 여행자는 나뿐이었다. 나머지는 전부 이 도시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었다.

부르즈 할리파를 올려다보던 밤과 같은 날이었다. 그 건물을 짓고 유지하는 사람들이 어디서 자는지를, 나는 그날 밤에 알게 됐다. 그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이어서 쓴다.

라마단 기간에 두바이를 여행한다면

라마단은 이슬람력을 따르기 때문에 해마다 열흘 남짓 앞당겨진다. 2026년은 2월 18일부터 3월 19일 무렵이고, 끝나면 이드 알 피트르 연휴가 이어진다. 가는 시기가 여기 걸리는지는 그해 날짜만 보면 알 수 있다.

지금은 내가 갔던 때보다 사정이 많이 나아졌다. 예전에는 낮에 문을 연 식당을 찾기 어려웠고 가림막을 쳐야 했지만, 최근에는 대부분의 레스토랑·카페·푸드코트가 낮에도 평소처럼 영업한다. 두바이몰이나 몰 오브 에미리츠 같은 대형 몰은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열고, 이프타르(해가 진 뒤 첫 식사) 이후로는 오히려 더 붐빈다.

다만 길거리에서 먹고 마시는 건 여전히 삼가는 분위기다. 법으로 금지된 건 아니지만 금식 중인 사람들 앞에서 드러내놓고 먹을 일은 아니다. 실내 식당이나 호텔 안이면 문제가 없다. 낮에는 관공서와 일부 상점의 운영 시간이 짧아진다.

공항에서 시내까지, 메트로 타는 법

터미널마다 사정이 다르다. 1·3터미널은 메트로 레드라인 역과 바로 연결돼서 표지판만 따라가면 되지만, flydubai를 비롯한 일부 항공사가 쓰는 2터미널에는 메트로역이 없다. 셔틀버스로 1·3터미널 역까지 가거나 시내버스를 타야 한다. 나는 2터미널로 도착해 역까지 걸어갔는데 새벽이라 역이 아직 문을 안 열었고, 결국 근처 주유소에서 교통카드를 사서 버스를 탔다. 도착 터미널이 어디인지부터 확인하면 이 삽질을 피할 수 있다.

요금은 놀(Nol) 카드로 낸다. 역 창구나 자판기에서 살 수 있고, 실버 카드 기준으로 구간에 따라 3디르함부터 시작한다. 공항역은 5존에 속해 시내 중심까지는 몇 존을 지나느냐에 따라 요금이 올라간다. 골드 클래스는 요금이 두 배지만 좌석이 여유롭다. 요즘은 앱으로 잔액을 충전하고 휴대폰을 태그해 통과할 수도 있다.

배차는 혼잡 시간대 2~4분, 그 외에는 5~7분 간격이다. 첫차·막차 시각은 역과 방향에 따라 다르고 금요일에는 또 달라진다. 나는 새벽 다섯 시에 내려 여섯 시 반쯤에야 메트로역에 있었는데, 그 사이를 공항에서 보냈다. 시각이 안 맞으면 택시를 타야 하고 요금 차이가 꽤 난다.

다음 편은 스키장이 있는 쇼핑몰과 황금 자동차, 그리고 몰에서 만난 가나 친구들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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