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알라룸푸르 페트로나스 트윈타워, 전망대에 돈 안 쓰기로 한 날

쿠알라룸푸르에서 맞은 첫 아침, 숙소를 나서면서 그날 목적지는 하나로 정해뒀다. 도시의 상징, 페트로나스 트윈타워였다. 실용 정보만 급하면 여기서 바로 내려가면 된다 — 페트로나스 전망대 예약 → · GO KL 시티버스 타는 법 →. 우선 그날 아침 이야기부터.

실전 정보를 바로 보고 싶다면 — 페트로나스 전망대 예약 · 쿠알라룸푸르 무료·시내버스

색깔버스 정류장에서 시작한 아침

숙소를 나와 큰길로 들어서자 바로 버스 정류장이 보였다. 유리 부스 안에 색깔별로 나뉜 노선도가 붙어 있었는데, 보라·초록·빨강·파랑 넉 줄이 도심을 그물처럼 훑고 있었다. 낯선 나라에서 버스를 처음 탈 때는 늘 눈치를 엄청 본다. 노선도를 몇 번씩 다시 보고, 검색을 해보고, 그러고도 확신이 안 서서 남들 타는 걸 지켜본다. 나라마다 요금 내는 방식도, 세우는 방법도 제각각이라 매번 처음부터 다시 배우는 기분이다. 그래도 이렇게 계속 도전하다 보면 어느 순간 어디를 가도 대중교통은 통달하게 된다. 이날은 아직 그 단계에 한참 못 미쳐서, 어느 색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방향만 맞춰 버스에 올라탔다. 몇 정거장을 가는 동안 창밖으로 뾰족한 탑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첨탑 끝에 둥근 전망대가 얹힌 모양이 남산타워랑 꼭 닮아서 반가웠다 — KL타워였다.

정류장에 붙어 있던 GO KL 시티버스 노선도
정류장에 붙어 있던 GO KL 시티버스 노선도

이날 일정에 KL타워는 없었다. 목적지는 따로 있었으니까. 창 너머로 눈도장만 찍고 지나쳤다.

아침 산책길에 버스 창밖으로 올려다본 KL타워
아침 산책길에 버스 창밖으로 올려다본 KL타워

쇼핑몰 하나를 통과해야 나오는 타워

버스에서 내려 좀 걷다 보니 대형 쇼핑몰, 수리아 KLCC로 빨려 들어갔다. 안에 통째로 수족관이 있다는 아쿠아리아 KLCC 간판을 지나쳐, 명품 매장이 늘어선 통로를 가로질렀다. 그렇게 몰을 통과해서 밖으로 나오니, 눈앞에 트윈타워가 서 있었다.

아래에서 올려다본 페트로나스 트윈타워와 스카이브리지

*페트로나스 트윈타워를 눈앞에서*

*아래에서 올려다본 페트로나스 트윈타워와 스카이브리지*

이 도시에 며칠을 더 머물기로 해놓고, 도착한 첫날 오전부터 이 건물부터 찾아온 게 스스로 생각해도 웃겼다.

스카이브리지, 41층과 42층 사이

두 타워 사이를 잇는 스카이브리지를 건널 차례였다. 41층과 42층 사이, 지상 170미터 높이에 걸린 이 다리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2층 구조 브리지로 꼽힌다. 1999년 영화 《엔트랩먼트》의 클라이맥스, 숀 코너리와 캐서린 제타존스가 매달리던 그 장면의 배경이기도 하다. 통로 양옆으로 유리창이 나 있고, 관광객들이 저마다 창에 붙어 시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도 그 틈에 껴서 셀카 한 장을 남겼다.

스카이브리지 통로를 걷다
스카이브리지 통로를 걷다

83에서 86으로, 유리창을 닦는 사람들

스카이브리지만 보고 끝인 줄 알았는데, 손에 든 입장권으로 더 올라갈 수 있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83층에서 내려 다시 86층행 엘리베이터로 갈아탔다. 버튼판에 노랗게 불이 들어온 86이 유독 눈에 띄었다.

86층 전망대로 향하는 엘리베이터 버튼
86층 전망대로 향하는 엘리베이터 버튼

452미터인 페트로나스 트윈타워는 1998년부터 2004년 타이베이101에 밀리기 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고,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쌍둥이빌딩 타이틀은 그대로 갖고 있다.

86층 전망대에 올라서니 반대편 타워 첨탑이 창 너머로 마주 보였다. 도시 전체가 발밑에 깔린 그 자리에서 사진 한 장을 남겼다.

전망대 창가에서, 반대편 타워 첨탑과 함께
전망대 창가에서, 반대편 타워 첨탑과 함께

창가에 붙어 사진을 찍다가 옆 통유리 너머로 이상한 걸 봤다. 헬멧을 쓰고 안전벨트를 맨 사람 둘이 바깥에 매달려 유리를 닦고 있었다. 86층, 지상 370미터에 가까운 높이에서 곤돌라 하나에 의지해 걸레질을 하는 모습이 통유리 너머로 훤히 보였다. 관광객들은 전망을 보러 올라왔는데, 누군가에게 이곳은 그냥 일터였다.

저 일은 절대 쉬울 수가 없다. 기술만 있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체질적으로 높이에 적응이 돼야 하는 일이다. 나는 창 안쪽에 서 있는데도 발밑이 간질거렸는데, 저 사람들은 그 바깥에서 하루치 일을 하고 있었다. 위험한 자리에서 일하는 사람들이구나, 대단하다는 생각만 계속 들었다.

86층 통유리 너머로 보인 유리창 청소부 두 사람
86층 통유리 너머로 보인 유리창 청소부 두 사람

그날 이후, 전망대엔 다시 돈을 안 쓴다

솔직히 말하면 실망한 쪽에 가까웠다.

전망대에 올라 이쪽저쪽 다 둘러봤는데, 생각만큼 높게 느껴지지가 않았다. 서울에서 63빌딩에 올라갔던 기억이랑 견줘봐도 그렇고, 요즘 롯데월드타워 전망대 이야기를 들어봐도 그렇다. 세계에서 제일 높은 쌍둥이빌딩이라는 타이틀에 비하면 올라와서 받는 느낌은 그냥저냥이었다.

무엇보다 할 게 없었다. 창밖을 보는 것 말고는 딱히 시간을 쓸 거리가 없는데, 그 창밖이 서울처럼 끝없이 뻗어나가는 풍경도 아니었다. 쿠알라룸푸르는 생각보다 큰 도시가 아니어서, 시내를 한 바퀴 훑고 나면 시선이 갈 데가 금방 없어졌다. 높은 데서 도시가 작다는 걸 확인하고 내려온 셈이다.

그 뒤로 지금까지 11년, 여행지에서 유료 전망대 앞에 서면 늘 한 번 망설인다. 한 번 제대로 올라가 봤으니 다음번엔 그 돈으로 다른 걸 하는 쪽을 고른다. 살면서 높은 곳은 앞으로도 여러 번 오르게 될 텐데, 매번 입장료를 내고 볼 만한 건 아니라는 결론이 이날 났다.

5링깃짜리 기념주화

전망대 한쪽에는 동전을 눌러 각인하는 기계가 있었다. 동전을 이렇게 찌그러뜨려서 기념품으로 만드는 걸 그때 처음 봤다. 5링깃을 넣고 손잡이를 돌리니 타원형 은색 동전에 트윈타워 모양이 찍혀 나왔다. 손바닥에 올려놓고 한참 들여다봤다.

그런데 딱히 감흥이 없었다. 손에 쥐어봐도 그냥 눌린 동전이라, 나오는 순간이 재밌었지 그 이상은 아니었다. 한 번 해봤으니 됐다 싶었고, 실제로 그 뒤로 다른 나라에서 같은 기계를 봐도 다시 돈을 넣지는 않았다. 전망대 이야기랑 결론이 똑같아진 게 좀 웃긴다.

5링깃 각인기로 눌러 만든 트윈타워 기념주화
5링깃 각인기로 눌러 만든 트윈타워 기념주화

KLCC 공원을 가로질러

전망대에서 내려와 다시 몰을 통과해 밖으로 나오니 KLCC 공원이 펼쳐졌다. 연못과 야자수 사이로 산책로가 나 있었고, 트윈타워를 등지고 걸으니 오전 내내 올려다보던 건물이 이번엔 뒤에서 나를 내려다보는 느낌이었다. 분수 너머로 쿠알라룸푸르 컨벤션센터 건물도 지나쳤다.

라마단이 한창이던 파빌리온

공원을 벗어나 부킷빈탕 쪽으로 걸었다. 30분 남짓 걸어 도착한 파빌리온 몰에 들어서자 천장 가득 금빛 별 장식이 걸려 있었다. 초록 카펫이 깔린 통로 양옆으로는 야자수 조형물이 늘어섰고, 라마단 기간 특유의 장식이 몰 전체를 덮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해 7월 초는 라마단과 하리라야 시즌이 겹치는 때였다. 여행 오기 전엔 신경도 안 쓴 일정이었는데, 도시 곳곳의 장식이 그걸 계속 알려주고 있었다.

다만 장식 말고는 라마단을 몸으로 느낄 일이 없었다. 축제 같은 게 벌어지는 것도 아니었고, 거리의 사람들도 평소와 다를 게 없어 보였다. 식당도 그냥 열려 있었고 밥 먹는 데 아무 지장이 없었다. 무슬림 인구가 절반이 넘는 나라인데도 여행자 입장에선 그냥 장식이 예쁜 시즌 정도였던 셈이다.

이게 얼마나 편한 조건이었는지는 한참 뒤 두바이에 가서야 알았다. 거기선 낮에 밥 먹을 데를 찾는 것부터가 일이었다. 그 이야기는 두바이 편에서 이어서 하겠다.

라마단 장식으로 뒤덮인 파빌리온 몰 내부
라마단 장식으로 뒤덮인 파빌리온 몰 내부

혼자 도전한 나시 레막

슬슬 배가 고파질 무렵, 근처 노점에서 나시 레막을 하나 시켰다. 삼발이라는 매콤한 소스에 삶은 달걀, 오이, 멸치와 땅콩까지 얹은 밥이 검정 트레이에 담겨 나왔다. 콜라 한 캔을 곁들이니 우리 돈으로 몇 천 원 수준이었다. 숟가락도 포크도 있었지만, 그래도 이 나라에 와서 처음으로 제대로 시켜 먹은 현지 음식이라는 사실 자체가 뿌듯했다. 한 입 먹자마자 다음에 또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맛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이 나시 레막 한 접시가 시작이었다. 이름도 모르는 음식을 일단 시켜보는 습관 말이다. 그때는 향도 맛도 전부 새로웠다. 삼발의 매운맛도, 멸치와 땅콩을 밥에 얹는 조합도 한국에선 먹어본 적 없는 구성이었다. 그 뒤로 나라를 옮길 때마다 메뉴판에서 모르는 걸 하나씩 골라 먹었고, 지금은 어지간한 외국 음식은 다 잘 먹는다.

그 첫 나라가 말레이시아였던 건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향신료가 낯설긴 해도 밥과 달걀과 튀김이라는 익숙한 뼈대 위에 얹혀 있어서, 처음 도전하는 사람이 감당하기에 딱 알맞다. 아무거나 먹어보기를 시작할 나라로 말레이시아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노점에서 시킨 나시 레막 한 접시
노점에서 시킨 나시 레막 한 접시

페트로나스 트윈타워 전망대 예약

지금은 시간대별 예약제로 운영된다. 온라인으로 입장 시간을 지정해 예매하고, 지정된 시간 최소 15분 전까지 로비에 도착해야 입장이 된다. 하루 입장 인원이 정해져 있어 성수기엔 당일 현장 구매분이 금방 마감되니 미리 온라인 예매를 해두는 편이 안전하다. 요금은 말레이시아 국적자와 외국인이 다르게 책정돼 있고, 외국인 기준으로는 대략 35달러 안팎으로 형성돼 있다. 예매·안내는 트윈타워 공식 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요금은 시기마다 바뀌니 방문 시점 공식 페이지에서 다시 확인하는 걸 권한다.

GO KL 시티버스 타는 법

그날 탔던 색깔별 버스가 GO KL 시티버스다. 초록·보라·빨강·파랑 등 여러 색상 노선이 도심을 촘촘히 돈다. 말레이시아 국적자는 마이카드를 등록하면 지금도 무료로 탈 수 있지만, 외국인 여행자는 2025년부터 주요 노선 기준 1회 RM1 요금이 붙는다. 현금은 받지 않고 터치앤고 카드나 카드, QR 결제만 가능하니 미리 챙겨두는 게 좋다.

다녀와서

반나절 만에 쿠알라룸푸르의 하늘을 다 본 기분이었다. 스카이브리지에서 시내를 내려다보고, 86층에서 반대편 타워 첨탑과 마주 보고, 유리창 닦는 사람들까지 구경했다. 정작 기억에 남은 건 전망이 아니라 그 바깥에 매달려 있던 두 사람이었고, 이날 제일 만족스러웠던 지출은 전망대 입장료도 기념주화 5링깃도 아닌 노점 나시 레막 한 접시였다. 유료 전망대는 한 번이면 충분하다는 것도, 모르는 음식은 일단 시켜보면 된다는 것도 이날 같이 배웠다.

다음 편은 그날 저녁, 예상하지 못한 사람들과 만나 손으로 밥을 먹고 로티 티슈를 나눠 먹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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